"미국에 살면서 저는 왜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의외로 시스템이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분야가 많아요. 한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면 기회도 열립니다."

모션 캡처(실제 배우의 연기를 디지털 캐릭터로 변환하는 기술) 촬영에 열중하는 전용덕 감독.

'슈렉' '쿵푸 팬더' 시리즈를 만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명가 드림웍스의 전용덕(47) 촬영감독은 입지전적 경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크루즈 패밀리' '쿵푸 팬더' 등에 이어 오는 16일 국내 개봉하는 새 애니메이션 '트롤'에서도 촬영감독을 맡았다. 영상 속 캐릭터·사물의 배열과 배경, 빛의 방향, 색채 등을 총괄해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그의 업무. 이번 영화가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 곱고 깜찍한 데는 그의 공이 크다. 전 감독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국 대학생들도 취업난에 허덕인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오르듯 천천히 역량을 쌓아가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인은 자기를 포장하는 기술이 뛰어나요.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교육을 받기 때문이죠. 리더십과 자신감,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수지요.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온다면 배움의 기회도 많습니다."

전 감독은 2004년 6월을 잊지 못한다. 애니메이션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미국 최고 예술대학 중 하나인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를 졸업하고 시카고의 한 애니 회사에서 일을 했다. 조금씩 꿈에 다가가고 있을 무렵 회사가 파산했다. 첫아이 태어난 지 2주밖에 안 된 때였다. "취업 비자가 말소되면 2주 안에 출국해야 했어요. 어찌나 황망하던지…. 이사 간 집에 인터넷이 안 돼서 도서관에 가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스팸 메일함에 드림웍스의 취업 인터뷰 요청 메일이 들어 있더군요. 세 번을 읽고야 '꿈이 아니구나' 깨달았죠." 전화를 받은 드림웍스 쪽이 오히려 떠들썩했다. 수화기 너머로 "용덕이 전화 왔대!" "와! 용덕이 찾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바로 전화 면접을 했고, 이틀 뒤 "축하한다. 와서 함께 일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철든 뒤 전화에 그렇게 흥분하고 기뻐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전 감독은 "여전히 내게 애니는 일이기보다 취미이자 도전이고, 직장은 놀이터인 동시에 전쟁터"라고 했다. 이번 영화 '트롤'은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깜찍한 요정들이 주인공. 작년 10월 개봉한 유럽과 북미 등에서는 이미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뮤지컬 형식인 만큼 뮤직비디오처럼 리듬감 있는 화면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어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은 한국 걸그룹 AOA 등의 뮤직 비디오를 참조했지요. 요정이 머리칼로 괴물 거미를 물리치는 장면은 우리 풍물의 상모돌리기에서 힌트를 얻었고요."

16일 개봉하는 드림웍스 새 애니메이션‘트롤’의 전용덕 촬영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애니메이터로 손꼽힌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대한 공룡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술은 이미 세계 수준이고, 한국 영화가 보여주는 스토리 텔링 능력도 미국과 유럽을 능가할 만큼 세련됐어요. 이 두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할 시스템이 아직 없었던 거죠."

그의 목표는 쉰 살 전에 총감독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는 작품을 만드는 것. "이제 저만의 이야기를 하도록 방향타를 조절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꼭 제 작품으로 인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