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 푸냐고요? 집에서 만든 맥주 심사 중입니다

    입력 : 2017.02.08 03:02

    [양조장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서 열린 자가 양조 맥주 경연대회]

    11개 종류 165개 출품작 쏟아져… 국내외 양조가 등 30명이 심사
    "팔기에 손색없을 만큼 품질 높아" 직접 맥주 만드는 '홈브루어' 늘어

    맥주 경연대회라기에 왁자지껄 흥겨울 줄 알았는데, 독서실처럼 조용했다. 심사위원들은 어려운 과학 문제라도 푸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맥주의 색을 보고, 냄새를 맡고, 입에 머금은 뒤 기록지에 점수를 적었다.

    지난 4일 서울 성동구의 맥줏집 겸 양조장인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서 열린 '홈 브루잉 컴퍼티션'(home brewing competition·자가 양조 맥주 경연대회). 11개 맥주 카테고리에 165개 출품작이 쏟아졌다. 대회를 주최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김태경 대표는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과 시장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자기 이름을 건 맥주가 최고의 맥주로 뽑혀 상품화돼 판매된다는 건 '맥덕'(맥주 마니아)들에겐 큰 명예죠."

    수제 맥주는 기업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양조장에서 자체 레시피대로 소량 제조하는 맥주를 말한다. 크래프트(craft) 맥주라고도 한다. 한국 수제 맥주 산업은 2002년 발아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가 관광산업 지원 목적으로 '소규모 제조 면허'를 신설, 맥주 양조 규제를 완화했다. 당시 1개뿐이던 소규모 양조장은 현재 80여개로 늘었다.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홈 브루어)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최대 수제 맥주 커뮤니티 '맥만동'(맥주 만들기 동호회) 회원 수는 3만명이 넘는다.

    지난 4일 열린 ‘홈 브루잉 컴퍼티션’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된 맥주의 향, 외관, 맛, 질감, 전체적 인상을 신중히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있다. 취하면 미각이 둔해져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맥주를 맛본 뒤 버킷에 뱉어내기도 했고, 빵과 비스킷으로 혀에 남은 맥주의 뒷맛을 씻어냈다.
    지난 4일 열린 ‘홈 브루잉 컴퍼티션’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된 맥주의 향, 외관, 맛, 질감, 전체적 인상을 신중히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있다. 취하면 미각이 둔해져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맥주를 맛본 뒤 버킷에 뱉어내기도 했고, 빵과 비스킷으로 혀에 남은 맥주의 뒷맛을 씻어냈다. /이태경 기자

    이번 대회 심사위원은 국내외 유명 양조가, 미국 맥주심사관(BJCP) 자격증 소지자, 맥주 소믈리에 등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출품된 맥주의 숫자뿐 아니라 수준에도 놀라워했다. 백우현(59) 전 OB맥주 생산총괄 전무는 "상업 맥주로 팔기에도 손색없는 출품작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하이트맥주 연구원 출신인 수제 맥주 업체 '브루원' 류지은(49) 이사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질 낮은 수제 맥주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나쁜 맥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출품된 맥주들은 먼저 카테고리별로 1등을 가린 뒤, 다시 이 중에서 최고를 가리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졌다. 165개 출품작 중에는 IPA(India Pale Ale)가 26개로 가장 많았다. 에일(상면 발효 맥주)의 일종으로 맛과 색이 진하고 쌉쌀한 홉 맛이 도드라지는 IPA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제 맥주로 꼽힌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소비되는 라거(하면 발효 맥주)는 9개로 가장 적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김만제 이사는 "라거는 국내 맥주 회사들이 오래전부터 생산해와 이미 흔한 데다 저온(8~10도)에서 장기 숙성시켜야 해서 발효 냉장고 등 많은 설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오전 10시 30분 시작된 맥주 출품작 심사는 오후 5시쯤 끝났다. 1등은 대구에 사는 최동혁(40)씨가 만든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이 차지했다. 벨기에에서 많이 마시는, 짙은 호박색에 풍미가 진한 에일 맥주다. 최씨는 "2~3년 전부터 맥주 공부를 하면서 여러 맥주를 맛봤지만 만족하지 못해 '차라리 내가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고 자가 양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맥주를 만들려면 6~8시간이 필요한데, 직장 다니면서 주말이나 휴가 때 만들려니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 먹는 것보다는 싸고,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있죠. 언젠가 수제 맥줏집 차려보는 게 꿈입니다."

    [직접 맥주 만들어보려면]

    기본 장비는 20만원, 재료비는 5~10만원

    맥주를 집에서 만들려면 맥아(보리)에 이스트를 더해 발효시킬 발효조, 발효된 맥아를 끓일 통, 온도계 등 대략 20가지 장비가 필요하다. 맥주 장비 전문점이나 웹사이트에서는 기본 맥주 양조 장비를 모은 '홈 브루 스타터 키트(home brew starter kit)'를 20만원대에 판매한다. 보리·밀 등 맥주의 기본 재료인 곡물과 이스트,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을 내는 홉 등은 어떤 종류를 얼마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번 '홈 브루잉 컴퍼티션'에서 1등을 차지한 최동혁씨 경우 "20L를 생산하는 데 5만~10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맥주 스타일별로 필요한 만큼의 재료와 레시피를 묶어 팔기도 한다. 10L 기준 3만~4만원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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