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학원이 名醫 만드는 시대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7.02.04 03:02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전문의 시험 학원 성업… 국회의원 학원, 대통령 학원 나올라…

    으레 학생이나 수험생들 사이에서 '족보'란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기출문제를 모아놓은 문제은행을 말한다. '족보'란 명칭은 의과대학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년 각 학교 시험이나 의사 국가고시 문제를 모은 것을 그렇게 불렀다. 한 학기 보통 10여 과목 학점을 모조리 따야 진급이 가능한 의과대학에서는 예전부터 선배들이 모아놓은 족보가 중요했다. 대개 알음알음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족보를 구할 만한 선배가 없는 학생들은 여기저기 족보를 구걸하기도 했다.

    의대만 가면 당연히 의사가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의대에는 유급제도가 엄격해, 한 학기에 배우는 수많은 과목을 모두 통과해야만 그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 과목이라도 낙제가 있으면 그 학기 전체를 재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1년 후배들과 함께 다시 그 학기 공부를 해야 한다. 낙제라는 장애물을 통과해 의대 졸업 자격을 얻었다 해도 의사 국가고시를 치러야 한다. 올해 발표한 제81회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은 92.8%였다. 100명 중 7명은 힘든 의대생활을 마쳤음에도 의사 자격증을 얻지 못했다. 의대를 졸업해서 의사 친구들은 많지만 자기는 의사가 아닌 것이다.


    [Why] 학원이 名醫 만드는 시대
    이런 상황이니 의사 국가고시 족보는 아예 달달 외워야 한다. 의대 족보는 복사물 형태로 대물림됐으나 최근에는 의사 국가고시 족보를 출판사에서 내놓아 모든 의대생의 필수품이 됐다.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서 버려진 족보를 목격한 적도 있다. 족보를 버렸으니 그 주인은 무사히 의사가 됐을 것이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수험생의 1% 내에 들어야 원서라도 내 볼 수 있다는 의대 학생들 가운데 족보로는 부족해서 의대 시험, 의사 국가고시, 심지어 전문의 시험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뿐 아니다. 대학원생들에게 논문 작성 방향과 요령을 가르쳐 주는 학원도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기저기 학원을 전전하는 요즘 세대에게 학원이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학원에 다니는 중3 딸에게 물으니 학교에는 체벌이 없지만 학원에서는 체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학원이 부모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는 말도 했다. "토가 나올 때까지 공부를 시킨다"는 학원이 있을 지경이다. 아이는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 실력이 좋다고 했고, 그 근거로 학원 선생님 학벌이 더 낫다는 주장을 폈다.

    줄넘기 학원, 축구 학원, 종이접기 학원도 있다고 하니 아마 컴퓨터 게임을 가르치는 학원도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면 우선 관련 학원을 찾는다. 물론 아이보다 엄마의 권유 때문일 것이다. 종이접기를 하는 시기에는 종이접기 학원, 음악 실기가 가까워지면 단소학원이 인기란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학원에서 늘 보충하며 뭔가를 배운 아이들은 커서도 무엇인가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학원을 전전하게 될 것이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무엇 때문에 실수했는지 고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국회의원 대비 학원, 대통령 대비 학원까지 나올 판이다. 운전학원에 다니며 운전면허를 딴 사람도 운전의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배운다. 학원 만능 시대여서 학교 유감이 깊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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