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사회부 기자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주 기각되자 행여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 아니냐며 초조해하던 이대(梨大)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교수협의회 사이트에는 "동문들이 전임 총장이 구속되는 치욕적인 장면은 안 봐서 다행"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대는 지금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 상태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특혜 입학 및 부정 학사 관리 의혹으로 유명 소설가 출신인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 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이인성 의류학과 교수 등 4명이 구속됐다. 특검이 영장을 청구한 5명의 교수 가운데 최 전 총장을 뺀 4명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 131년 이대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최근 서울 신촌의 이대 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하나같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들 했다. 몇몇 학생은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죄가 있는 교수님들을 세게 처벌해야 한다"고도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학사 특혜 비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2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번 사태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최 전 총장 측은 지난 24일 영장실질심사 직후 "이대 신입생이 3000명인데 뭐가 특별하다고 그(정유라)를 보겠느냐?"며 "(혐의는) 나중에 상상을 갖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김경숙 전 학장은 지난 10월 기자에게 "이화를 사랑해서 16년간 보직을 했고 체육계에서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이인성 교수도 "계절학기에 어떤 기준으로 학점을 줬는지 알기나 하느냐. 오보를 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펄펄 뛰었다.

이런 모습이 이어지면서 인터넷 등에 이대 관련 기사가 나오면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악성 댓글로 도배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대가 최근 '악플과의 전쟁 선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대는 "131년 전통의 이화여대는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으로 시작된 세계적 명문 여자대학으로, 한국 여성 교육의 역사이자 한국 여성 리더의 산실"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했다. 이 보도자료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질시(嫉視) 등으로 인해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이대는 "악성 게시물 증거를 수집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악의적으로 이대를 공격해 온 악플러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악플러 몇 명 잡는다고 땅에 떨어진 명예가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이대는 총장이 3개월째 공석이고,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윤후정(85) 명예총장도 지난해 11월 학교를 떠났다. 이 와중에 차기 총장 선출 방식을 놓고 교수·교직원·학생과 법인 이사회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위기에서 '악플러 퇴치' 대책밖에 내놓을 게 없는 것이 이대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