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입력 : 2017.01.31 03:02

    일본서 국제결혼한 사진가 부부
    사진은 눈 아닌 마음으로 찍고 사랑은 안개 자욱한 도로에 그려진 인생의 화살표라 믿어
    가난한 삶에다 미래도 불안하지만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게 해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라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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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까머리 총각이 바다 건너 일본으로 온 것은 서른 살 때입니다. 동네 건달로 빈둥거리다 뒤늦게 철들어 큰맘 먹고 떠나온 길이지요. 술과 풍류에 빠져 어머니 속 바글바글 끓이던 아버지가 암(癌)으로 운명하신 뒤였습니다. 비자 얻으려면 학교를 다녀야 한대서 숙소에서 가까운 아무 곳이나 덜컥 등록한 게 사진 학교입니다. 뭔 얘길 하나 싶어 들어간 첫 수업에서 총각은 입이 딱 벌어졌다더군요.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것이 있는 줄 태어나 처음 알았답니다. 까까머리 총각에게 달려온 또 하나의 운명은 저, 마오입니다. 12년 전, 도쿄공예대학원 사진학과 학생들의 회식 자리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그 까까머리 총각은 도통 말이라곤 없더니 술 마실 때만큼은 헤벌쭉 잘도 웃었습니다. 항상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다녀 사람들이 한국 영화 제목을 따 '실미도'라 불렀던 남자입니다. 유머도 엉뚱했습니다. 한 친구가 울자 총각이 말합니다. "실컷 울어. 네 눈에 물고기가 살고 있으니 울고 또 울어야 그 고기들이 헤엄칠 수 있거든."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하면 곧잘 강의실 계단에 기대 잠들어 있습니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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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연인은 다다미 여섯 장짜리 비좁은 총각의 월세방에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가끔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면 아래층 할머니가 "지진이다!" 외치며 마당으로 뛰어나왔지요. 저는 그의 빛나는 재능도 사랑했습니다. 거리의 노숙자들, 환락가의 야쿠자와 경찰들, 집 없이 떠도는 아이들 모습을 살아 펄떡이는 활어처럼 담아낸 사진들…. 왜 이렇게 슬프고 무서운 사진을 찍느냐고 물으면 총각은 "내 마음이 자꾸만 그들에게로 가서 닿아" 했습니다.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이철원 기자
    도쿄 변두리 방 한 칸, 부엌 한 칸인 집에서 우리는 신혼을 시작합니다. 외풍이 세서 얼굴에 수건을 감고 자야 하지만 순한 양처럼 잠든 남편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전시 횟수도 늘고 크고 작은 상도 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난한 사진가 부부입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편은 새벽 5시면 공사판으로 일을 나갑니다. 저도 유치원에서 사진 찍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남편은 공사판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일을 잘한다고 웃돈 얹어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노가다에선 스카우트 제의가 많은데 왜 사진가에선 스카우트 제의가 없지?" 합니다. 남편은 동전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습니다. 옷 좀 사 입으라고 하면 "나는 영혼이 깨끗해서 옷은 좀 더러워도 돼" 하며 웃습니다. 머리도 직접 '바리캉'으로 깎습니다. 제가 한번 깎아줬더니 "각도가 중요한데 너 때문에 엉망이 됐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사진전 초대를 받아 남편과 동행한 파리 여행은 잊을 수 없습니다. 몽생미셸까지 갔는데, 맛있기로 유명한 그곳 양고기를 못 먹고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안 나오는지 머리를 긁적이는 남편에게 "괜찮아, 다음에 와서 먹으면 돼"라고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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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가 돈 걱정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은 남편 고향 정읍입니다. 거기에 또 한 분의 어머님이 계십니다. 결혼 허락을 받느라 처음 정읍에 갔을 때 어머님은 "느희들 마음대로 혀~"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양손을 가슴에 얹고 자는 모습까지 남편과 똑 닮은 여인입니다. 열무김치에 담북장, 고추장, 참기름 넣어 만들어주시는 비빔밥은 남편 말대로 '징그럽게' 맛있습니다. 양푼째 제가 안고 먹으면 어머님이 헤벌쭉 웃습니다. 저를 예뻐해 주는 여인들은 또 있습니다. 짧은 머리 일제히 꼬불거리고, 울긋불긋한 고무줄 바지를 일제히 입고 계신 동네 아주머니들입니다.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시집가던 날 우리에게 맛있는 떡을 만들어주신 그분들은, 남편 뒤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저만 보면 짓궂게 묻습니다. "멀대 같은 저 녀석 뭣이 그리 좋은고?"

    제가 찍은 남편의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안개가 심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자 남편이 자동차에서 내려 도로의 화살표를 살핍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 흑백사진처럼 인생의 기로, 고비에 서는 날들 수없이 많겠지만 둘이 함께여서 두렵지 않은 것, 그게 사랑 아닐까요? '군화 물광 내듯' 아내의 낡은 부츠를 반짝반짝 닦아주고, 저녁 찬거리 사러 자전거 타고 수퍼에 함께 가주는 이 남자가 좋습니다. "사진을 못 찍으면 난 죽은 거나 다름없어" 울부짖는 이 불 같은 사내를 사랑합니다. 저를 언제나 웃게 만드는 이 착한 남자가 있어 가난도, 운명도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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