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약칭 일베)’의 이용자 수가 최근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베의 침체는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보수 성향 젊은이들이 위축된 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보수 세력 내에서 빚어지고 있는 세대 갈등과 분화 현상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30일 미국 데이터 분석 업체 시밀러웹(SimilarWeb) 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 일베의 하루 평균 방문 수는 70만4000이었으나, 올 1월 들어 23일까지 하루 평균 방문 수는 약 52만2000으로 줄었다.

일베의 하루 평균 방문 수는 작년 9월 70만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10월 60만9000으로 10만가량 급감했다. 그 이후 11월에는 평균 53만8000으로 다시 줄어든 뒤 12월 52만, 1월 52만2000에 머물며 기존의 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9월까지 평일 낮 시간대 보통 2만명 이상을 기록하던 동시접속자(PC 기준)도 11월 이후에는 1만명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최순실’이란 실명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작년 9월20일이다. 그리고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비화한 것은 10월24일. 최순실 사태의 전개 과정과 일베 방문 수 감소 추세가 동반해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순실 사태는 왜 인터넷 공간의 극우 사이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일베의 위축은 최순실 사태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활성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온라인에서는 친박 세력이 결집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박사모 카페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 거의 유일한 우파 성향 커뮤니티인 일베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박사모’의 일베 유입은 역설적이게도 일베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박사모 회원들이 일베에 글을 많이 올리면서 일베의 베스트게시판인 ‘일베 일간베스트’에는 정치 관련 글의 비중이 늘었다. 그 전에는 일베도 다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정치보다는 유머와 정보를 담은 글의 비중이 높았는데, 최순실 사태 이후 친박 성향의 정치 관련 글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자 기존의 젊은 이용자들은 ‘재미가 없다’ ‘추천 조작으로 일간베스트 게시판을 점령한다’고 항의하며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운영진은 친박 성향 네티즌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운영진이 친박 네티즌을 편애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이용자들이 나오기기도 했다.

세대간 갈등 양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베에서 활동해오던 기존의 젊은 네티즌 중에는 일베 사이트로 들어와 박 대통령 옹호 글을 올리는 친박 네티즌들 중에 고령자가 많은 점을 두고 ‘정게할배(정치게시판 할아버지)’ ‘틀딱(‘틀니 딱딱’의 줄임말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 등으로 부르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다.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에는 “알겠으니까 정치게시판으로” “네다틀(네 다음 틀딱의 줄임말로, 글 내용을 보니 글쓴이가 틀림없이 ‘틀딱’이라는 것)” 등의 댓글이 달렸다.

최근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정치 관련 글을 많이 쓴다'며 한 이용자를 겨냥해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틀니를 부숴버린다' '박사모 건드렸더니 비추가 엄청나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노년층에 대한 원색적 비난도 많았다.

실제로 25일 오후 박 대통령을 인터뷰해 방송한 ‘정규재tv’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했다며 “경축”이라고 한 글은, ‘추천’(일베로)이 230개 찍히는 동안 ‘비추천’(민주화)도 120개를 기록했다. 이 글에는 “틀니가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노인정tv” “그만 좀 올려” “이게 왜 일베냐, ‘저퀄리티’ 글의 추천을 조작하는 게 ‘틀딱’의 문제”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일베 커뮤니티의 위축은 최순실 사태로 인한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젊은 보수의 위기’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갤럽이 탄핵 가결 직후인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대 새누리당 지지율은 22%, 60대 이상 30%로 상당수가 지지층으로 남아 있었지만, 20대 5%, 30대 4% 등 젊은 새누리당 지지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약 3개월 전인 9월 첫째주 한국갤럽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20대 17%, 30대 17%를 기록하는 등, 그동안 젊은 층 사이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분열된 보수층의 한 단면으로도 풀이된다. 지난 25일 문화일보가 여론조사한 결과, 진보층은 결집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보수층은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답이 평균을 밑도는 등 분열 양상을 보였다. 또 응답자 3명 중 2명은 '차기 대선에서 진보가 집권해야 한다'며 정권 교체를 주장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보수 진영이 위축되고, 정치 이념 지형이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