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명예훼손 무죄

입력 2017.01.26 03:04

형사재판 1심 판결… 위안부 할머니들 "이 나라엔 법도 없냐" 분노
법원 "일부 틀린 사실 있어도 고의성 없어 형사처벌 대상은 아냐"

학문의 자유 폭넓게 인정에 의의… 피고인석 朴교수는 "명판결 감사"
民事선 9000만원 손해배상 판결

박유하 교수
박유하 교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에서 '자발적' '매춘' 등의 표현을 써서 논란을 빚은 박유하(60) 세종대 교수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박 교수에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5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이상윤)는 "'자발적 위안부가 있다' 같은 일부 표현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이는 많게는 32만명에 달하는 위안부 전체에 대한 막연한 기술을 한 것일 뿐 고소인(피해 할머니들)을 특정해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책에서 문제가 된 표현 대부분은 저자의 의견 표명"이라며 "이 문제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와 가치 판단 문제로 사회적으로 시민과 전문가들이 상호 검증하고 논박할 사안이지 법원이 형사 처벌을 내릴 게 아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작년 1월 위안부 피해자 9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격권 등을 침해했다"며 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5일 무죄 판결을 받자 이용수(왼쪽) 할머니가 “이 나라엔 법도 없냐”며 화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는 이날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동부지법 1호법정에 나와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5일 무죄 판결을 받자 이용수(왼쪽) 할머니가 “이 나라엔 법도 없냐”며 화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는 이날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동부지법 1호법정에 나와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연합뉴스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용수(89)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판사를 향해 "왜 무죄냐. 이 나라엔 법도 없느냐"고 항의했다. 50여석인 좌석을 가득 채우고 법정 뒤편까지 꽉 들어찬 방청객 100여명 사이에서도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피고인석에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박 교수는 무죄판결 직후 법정을 빠져나가며 기자들에게 "명판결이었다. 혼자 대적하기 너무 힘들었지만 판사님이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종대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사건 일지표

피해 할머니들은 박 교수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민사소송 결과와 다른 이날 판결에 크게 반발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4부는 작년 1월 "'위안부는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한 존재' '성(性)의 제공은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 등 박 교수의 주관적 의견에 해당하는 부분은 약간의 과장을 넘어 위안부가 피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왜곡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반면 이날 형사 재판부는 "공적인 사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더 넓게 인정돼야 하고 (형사 처벌을 받는) 명예훼손에 대해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기존 사료와 선행 연구를 토대로 주류적 시각과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책의 일부 표현으로 인해 고소인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하더라도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봤다. 피해 할머니들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박선하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법원은 전쟁 성노예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하고 순진한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2013년 8월 출간 당시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존 시각과 다른 서술로 비판받았다. 박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 모집과 운영을 담당한 것은 주로 조선인 업자였다"며 이 문제에 한국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의 재판은 '학문의 자유' 논쟁으로도 비화됐다. 학문적 저술을 사법 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었다. 반면 민사 재판부와 검찰은 "역사적 인물이 생존해 있는 경우엔 인격권에 대한 보호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고 봤다. 검찰은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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