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래 소리 지른 최순실

조선일보
입력 2017.01.26 03:04

["죽을죄 지었다"던 최순실은 어디 가고…]

특검 강제구인에 작심한 듯 "민주주의 특검 아니다…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했다"

최씨, 고개 치켜들고 "억울하다"… 특검서 종일 '묵비권'
딸 정유라 송환 결정 앞두고 극심한 압박감 느끼는 듯
법조계 "朴대통령 탄핵심판 지연 전략에 보조 맞추기"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 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25일 오전 11시 15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강제 구인된 최순실(61·구속 기소)씨가 갑자기 취재진을 향해 소리쳤다. 최씨는 한 달 넘게 여섯 번에 걸친 특검팀의 소환에 불응하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체포영장이 집행돼 서울구치소에서 특검 사무실에 나왔다. 상아색 수의(囚衣)를 입고 법무부 호송 차량에서 내린 최씨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여성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천천히 취재진을 향해 걸어 들어왔다. 지난달 24일 특검 사무실에 처음 출석할 때만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온몸을 웅크린 채 교도관들에게 몸을 기대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법원과 검찰에 나올 때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착용했던 흰색 마스크도 이날은 쓰지 않았다.

특검에 강제 구인된 최순실씨가 25일 오전 11시 15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취재진 들으라고… - 특검에 강제 구인된 최순실씨가 25일 오전 11시 15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최씨는“특검이 내가 박 대통령과 경제 공동체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고 있다”“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이진한 기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좌우를 살핀 최씨는 취재진과 가까워지자 작심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애와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하고 이 땅에서 죄를 짓고 살게 하겠다는데….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서더니 취재진을 향해 고개를 돌려 "이것은 너무 억울하다. 우리 아기까지 다, 어린 손자까지 그렇게 하는 건…"이라고 외쳤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최씨는 결국 교도관들에게 떠밀려 특검 조사실로 향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특검 사무실 청소관리원 아주머니가 "염병하네"라고 세 차례 소리쳤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31일 독일에서 귀국해 서울 서초동의 검찰에 처음 출두하던 날에는 울먹이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했었다.

특검팀에 따르면 최씨는 이날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구인될 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호송 차량을 타고 구치소를 나와 특검 사무실까지 오는 동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최씨가 돌변해 전 국민이 들으라고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해 이규철 특검보는 "최씨가 의도적으로 특검 수사를 흠집 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날 하루 종일 이어진 특검팀 조사에서도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특검팀은 최씨에게 딸 정유라(21)씨의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비리와 관련해 집중 추궁했지만 최씨는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씨는 종종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특검팀 관계자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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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종찬 기자·연합뉴스
최씨는 지난해 10월 31일 독일에서 돌아온 직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할 때만 해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밀려든 취재진에 당황해 신발 한 켤레가 벗겨진 채로 조사실로 향했다. 구속된 이후 최씨는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취재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최씨는 지난달 19일 열린 자신의 첫 형사재판에 나와서도 취재진의 카메라와 방청객의 시선을 피하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생년월일과 직업 등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씨는 지난달 24일 특검팀의 조사를 받고 나서 일체의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건강상의 문제' '재판 준비' '정신적 충격' 등의 사유를 대며 총 6차례의 특검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도 '특검 조사 준비'를 대며 나가지 않았다가 지난 16일 헌재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때 최씨는 8시간 넘게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그는 이날 증언에서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아니다'는 답변을 200차례 넘게 했다. 최씨는 탄핵 심판 청구인 측인 국회 탄핵소추인단의 질문에는 "구체적인 증거를 대보라" "그런 유도신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또 헌재 증언에서 "특검이 강압 수사를 해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열린 자신의 형사재판에서도 최씨는 발언권을 요청해 증인으로 나온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의 증언을 적극 부정했다. 노씨는 최씨의 국정 농단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 중 한 사람이다. 최씨는 법정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모든 것을 저한테 다 몰아가니 황당하다"며 "K스포츠재단으로 사익을 추구하려 한 것이 전혀 없다. 제대로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가 특검에 나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검찰을 거쳐 특검으로 이어진 수사 과정에서 최씨가 실제 심한 압박을 느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다 최씨는 그간 변호인에게 "무기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런 심리 상태에서 굳이 특검 수사에 협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조만간 덴마크 검찰이 한국으로 송환 여부를 결정하게 될 딸 정유라씨와 손자 때문에 더 절박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최씨가 이날 딸과 손자를 거듭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의 중론은 최씨가 박 대통령 측의 헌재 탄핵 심판 지연 전략과 보조 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쪽이다. 박 대통령 측은 지난 23일 헌재에 39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는 등 노골적으로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씨 역시 수사 기한이 다음 달 28일까지로 정해져 있는 특검 수사에 최대한 비협조하면서 시간을 벌고, 자신의 범죄 사실이 박 대통령과 직결되는 상황을 막아보려고 특검 조사 전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최씨 측의 근거 없는 주장에 개의치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진술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대로 조서를 받아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인물 정보]
朴대통령 "최순실 사건은 허황된 얘기가 산더미 같이 덮혀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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