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초등 4학년보다 낮은 중2 '아동 권리 지수' … 학업 압박으로 생존권 등 위협 받아

    입력 : 2017.01.24 03:06

    크면서 낮아지는 아동 권리 지수
    재정 자립도 높을수록 점수 올라
    격차 해소 위해 정부 역할 필요

    #1.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허다연(16)양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분에 시작된다. 오후 4시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이동해 저녁 10시까지 공부한다. 방학이 되면 자유시간은 더 줄어든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일명 '텐투텐(10 to 10)'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새벽 2시가 돼야 집에 갈 수 있었다. 허양은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노는 게 일상이었는데, 중학생이 된 후 이런 생활을 반복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면서 "대학에 가서 자유시간이 생기면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2. 초등학교 6학년인 강지윤(13)양은 학교가 끝나는 2시 무렵부터 학원에 가는 오후 4시까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분식집에서 함께 떡볶이를 먹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고민도 나눌 수 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7시 이후로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강양은 "졸업 전 마지막으로 반 친구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갈 계획을 세웠다"면서 "아쉽지만 중학생이 되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년별 아동 권리 지수
    ◇중2, 초4보다 낮은 권리 지수…학업으로 '생존권' '발달권' 위협받는 아이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권리 침해가 점점 심각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14일 굿네이버스 아동 권리 포럼에서 발표된 '대한민국 아동 권리 지수'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학생의 권리 지수는 93.1점으로 초등학교 4학년의 권리 지수보다 12.8점 낮았다. 아동 권리 지수는 전체 평균값을 100점으로 놓고 산출했다. 지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생존권·발달권·보호권·참여권 등 총 4가지 권리 유형별로 구성됐다. 연구는 초4·6학년과 중2학년 학생 9000명, 보호자 9000명을 표본으로 진행됐으며, 아동의 권리 경험과 더불어 가정·학교·지역사회 등 환경 실태와 아동의 건강, 학업 성취, 인성 등 발달 사항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연구 결과 학년별 격차가 가장 큰 권리는 생존권(18.2점)과 발달권(13.7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생존권 지표 중 하나인 식생활과 관련해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있는 중2 학생의 비율은 63.7%로 초4 학생들에 비해 5.4%p 낮았으며, 인스턴트식품 섭취 비율은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수면 부족을 느끼는 학생의 비율 역시 중2 학생이 초4 학생보다 2.6배나 많았다.

    발달권에 포함되는 '학교 생활 만족도' 부문에서는 초4 학생의 평균 점수가 77.2점(100점 만점)인 것에 반해 중2 학생의 만족도는 64.9점에 그쳤다. '놀이와 휴식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중2 학생은 23%로 초4 학생에 비해 약 8%p 많았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학년이 될수록 권리 지수가 낮아지는 가장 큰 요인은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된다"면서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올라가야 하는 참여권 지수도 역으로 12.1점 하락하는 등 강압적인 학교 교육 체계와 분위기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학교에서 체벌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중2 학생이 초4 학생에 비해 약 4.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다연양 역시 중학교에 진학한 후 갑자기 생긴 규제들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초등학생 때와 다르게 쉬는 시간에 친구 반에 갈 수도 없고, 자유롭게 하던 염색이나 파마도 '학생답지 않다'며 제재를 당한 것. 허양은 "여학생들은 겨울에도 교복 치마만 입어야 하는 규칙이 지나치게 권리를 제한한다고 생각해 체육복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교장실에 건의했다"면서 "다행히 지난해부터 교칙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학생은 학생답게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불분명한 이유로 행해지는 부당한 제지가 많다"고 말했다.

    지역별 아동 권리 지수
    ◇재정 자립도 높을수록 아동 권리 지수 높아…격차 해소하려면 국가적 접근 필요

    지난해 12월 부산교육청은 '학생의 목소리에 응답하라'는 슬로건 아래 김석준 교육감과 학생 대표 150명의 만남을 주선했다. 추운 겨울에도 무릎 담요를 덮지 못하게 하고, 외투색을 제한하는 등 학생들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교칙들이 속속 공개됐다. 학업 성적이 낮거나 벌점을 받은 이력이 있는 학생을 임원 선거에 나가지 못하도록 제한한 학교도 있었다. 부산교육청은 이날의 만남 이후 즉시 시내 모든 중·고등학교에 "학생 목소리를 반영해 교칙을 재개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학교별로 수정된 교칙은 교육청 컨설팅을 거쳐 올해 2월 완성될 예정이다. 이기원 부산교육청 건강생활과 장학사는 "올해부터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특수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 100만원씩 자치 활동비가 지원된다"면서 "학생들이 활동비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배포하고, 최우수 자치 학교로 선정되면 추가 지원금 300만원을 부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교육청의 가장 큰 테마는 '학생이 즐거운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학생 대표와 만나는 자리를 정례화한 것 역시 아이들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입니다."

    부산의 아동 권리 지수는 107.0점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특히 발달권(112.1점)과 참여권(110.5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발달권 지표에 해당하는 학교생활 만족도는 78.3점으로 전국 평균 72점에 비해 6.3점 높았다. 학교 생활 만족도가 가장 낮은 충북과 비교하면 무려 11.6점이나 앞선다.

    반면 전북은 전국 93.7점으로 아동 권리 지수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드러났다. 특히 생존권(15위)과 보호권(15위) 침해가 두드러졌다. 김경환 굿네이버스 전북본부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가정이 많음에도 지역사회의 유관 복지 시스템과 예산이 부족해 돌봄에 누수가 생기는 등 아동 학대 발생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북 지역 아동 중 심각한 신체 학대를 경험한 비율은 2.5%로 평균 0.7%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많았다. 지난 1년간 월 평균 1회 이상 사이버 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아동의 비율도 4.8%로, 16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전북도청 역시 지역 내 아동 권리 증진을 위해 지난해 117개의 아동정책 시행 계획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올해는 그 숫자를 더 늘려 234개 과제를 발표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예산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습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균형 있게 아동 권리가 증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국가적 방침이 없으니, 아동 정책에 따로 쓸 예산이 없는 지역의 아이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12월14일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아동 권리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2월14일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아동 권리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 굿네이버스 제공
    전문가들 역시 지역 간 아동 권리 지수 격차를 재정 자립도에서 찾고 있다. 아동 권리 지수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의 상관계수는 0.668로 다른 요인들에 비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상관계수는 두 변수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1부터 1 사이 값으로 나타낸 수로, 0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낮다). 재정 자립도 외에도 사회복지 예산 비율(0.652)과 소득(0.619)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봉주 교수는 "경제활동 주체가 아닌 아동은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에 권리 보장 경험 역시 지역의 인프라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돼 있듯 아동의 권리 보장은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1989년대부터 '애니 E 케이시' 재단이 해마다 50개 주 어린이들의 삶의 질을 측정한 '키즈 카운트(Kids Count)'를 발표합니다. 지역별 격차와 전년도 점수 대비 등락이 공개되기 때문에 아동 정책에 소홀한 주정부는 긴장하게 되고, 전문가와 NGO는 아동 복지 정책과 예산 편성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동 권리 지수도 이 같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됩니다."

    신원영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지역별로 아동 권리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라면서 "향후 2년마다 전국 단위로 아동 권리 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지역별 아동 권리 현황과 욕구를 반영한 아동 권리 증진 사업의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동 권리 지수의 전체 데이터는 오는 3월 굿네이버스 홈페이지(www.goodneighbors.kr)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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