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평생 '빌딩 대신 책 쌓아올리며' 1만종 펴낸 출판인

    입력 : 2017.01.23 03:03

    [박맹호 민음사 회장]

    1966년 시작한 옥탑방 1인 출판사, 비룡소 등 8개 브랜드로 키워내
    이문열·한수산 등 스타 작가로… 시인 고은 "실천이 빨랐던 사람"

    "가끔 길을 가다 수십 층짜리 빌딩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 저 빌딩을 올렸을 테지만 나는 평생 책을 쌓아 올린 셈이다. 어느 쪽이 더 보람찬 인생일까."(박맹호 지음 '책'·257쪽)

    한국 출판의 거목(巨木)인 민음사 출판그룹 박맹호(83) 회장이 22일 0시 4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청진동 옥탑방에서 아내 패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시작한 1인 출판사는 그 사이 비룡소·황금가지 등 8개 브랜드·누적 1만종을 펴낸 '출판 명가(名家)'가 됐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처음 '문학청년 박맹호'가 되기를 원했다. 등단의 꿈을 이뤘다면, 지금의 민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한 소설 '자유풍속'이 심사위원인 평론가 백철에게 '일석(一席)'으로 추천받았지만,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과도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다. 이후 출판인의 길을 택한 그는 당대의 문재(文才)를 찾아내 적극 후원했고, 민음사의 기획들은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와 늘 함께하게 된다.

    박맹호 회장은 생전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옥 사무실에서 문인·학자들과 토론하고 수많은 책을 기획했다. 사진은 2011년 5월 창립 45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기 전 사무실 소파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한 박맹호 회장.
    박맹호 회장은 생전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옥 사무실에서 문인·학자들과 토론하고 수많은 책을 기획했다. 사진은 2011년 5월 창립 45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기 전 사무실 소파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한 박맹호 회장. /이진한 기자
    1973년 시작한 '세계 시인선'은 고은 김현 김주연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번역하고 원문까지 함께 실은 국내 최초의 시집이었고, 1974년 김수영 김춘수 정현종 이성부 강은교의 이름으로 출범한 '오늘의 시인 총서'는 선풍적 인기와 함께 단행본 출판의 본격 가로쓰기 시대를 열었다. 1977년 한수산(부초)을 1회로, 박영한(머나먼 쏭바강) 이문열(사람의 아들)을 스타로 만든 '오늘의 작가상' 역시 응모 원고를 심사해 선정한 최초의 문학상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유종호가 초대 편집위원이었던 계간지 '세계의 문학'이 문청(文靑)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음은 물론이다.

    박맹호라는 나무 아래에서 문학의 꿈을 펼친 문인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동갑내기 시인 고은은 매일 청진동 옥탑방 시절의 민음사로 '출근'해 짜장면을 먹었고, 밤이면 함께 술집으로 향했다. 1970년대 '문학과지성사'를 차려 독립하기까지, 김현·김주연·김치수·김병익 등 '문지 4K'가 기획을 하고 책을 낸 곳도 이 옥탑방이었다. 고은은 시집 '만인보' 10권 박맹호 편에서 "발상에서 행동 사이에 거의 틈이 없다"고 그를 표현했다. 마치 '서론이 없는 본론'처럼, 바로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고인과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젊은 시절 박맹호는 친구들을 먹이고 재우며 뒷바라지하는 일이 잦았다. 캐들어갈수록 속내가 깊은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고인은 출판을 '벽돌 쌓기'에 비유하곤 했다. 대박을 꿈꾸며 쉽게 뛰어들어 서둘러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대한출판문화협회장 시절이던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역시 임기 중이던 2007년 조선일보와 공동 주최로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을 1년 동안 전개했다. 조선일보 창간 기념일인 3월 5일 시작한 이 캠페인은 첫날 5000명이 신청했고, 사흘 만에 1만명을 넘어선 기념비적 독서 운동이었다.

    박맹호 회장이 1966년 청진동 옥탑방에 있는 민음사 첫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박맹호 회장이 1966년 청진동 옥탑방에 있는 민음사 첫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민음사
    팔순을 넘긴 뒤의 마지막 공식 석상은 2015년 2월 '오늘의 작가상' 개편 기자간담회였다. 수상작을 민음사에서 펴내던 예전 방식을 접고, 다른 출판사의 책까지 포함시켜 심사한다는 파격적 내용이었다. 그해 수상자였던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과 이듬해 수상자인 장강명의 '댓글 부대'는 모두 다른 출판사의 책이었다. 박 회장은 개편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 팔십 넘어서 내가 새로 할 일이 뭘까, 생각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떠올렸다. 민음사가 얻는 것은 없다. 있는 거 다 뿌리고 가겠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윤철호)는 "고인은 한평생 '책을 사랑하고 만들고 사라져 간' 영원한 출판인"이라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위은숙씨, 장녀 박상희 비룡소 대표, 장남 박근섭 민음사 대표, 차남 박상준 사이언스북스 대표, 큰며느리 김세희 민음인 대표, 둘째며느리 김현희 아주대 미디어학과 교수가 있다.





    [기업 정보]
    '올곧은 백성의 소리를 담는다'는 뜻을 담아 창립한 민음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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