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고? 천만에, 그 반대일 것"

    입력 : 2017.01.23 03:03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첫 訪韓… 최재천 교수가 만나다]

    "스스로 진화할줄 아는 AI 등장땐 인간 유전자 확산에 도움 줄 수도
    진화론은 과학자가 공감대 넓혀야… 세이건·굴드, 노벨문학상 탈 만해"

    "AI(인공지능)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만은 아니다. 스티븐 호킹, 일론 머스크는 AI가 인류를 지배할까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러나 역사의 바퀴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확보 등 더 나은 방향으로 굴러갔다."

    지난 21일 처음 방한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76)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국내 대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도킨스는 강연 회사 마이크임팩트 주최로 열리는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참석 차 한국을 찾았다.

    도킨스보다 대중적이고 논쟁적인 과학자는 찾기 어렵다. 자연 선택이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주장을 풀어낸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1976)는 줄곧 국내 과학도서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한 스테디셀러다. '만들어진 신'(2006)은 전 세계에서 300만부 넘게 팔렸다. 동시에 강경한 무신론자로 종교계와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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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오른쪽)와 최재천 교수가 21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펭귄, 멧돼지 등 동물 무늬 넥타이를 즐겨 맨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도킨스는 사슴이 여럿 그려진 타이를 하고 나타났다. /주완중 기자

    그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을 이어나갔지만, 때로는 단숨에 형용사를 네댓 개씩 붙여가며 빠르게 입을 놀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얘기가 나오자 "자아도취적이고 허영심이 강하며 허풍이 센 데다 외국인 혐오증을 앓는 두 살배기"라고 했다. 그는 '다윈 이후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라는 찬사와 '다윈의 로트와일러(사납기로 유명한 독일 개)'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다음은 도킨스와의 일문일답.

    ◇'이기적 유전자'가 AI 시대에 살아남을까.

    ―작년 AI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사건이 한국에 큰 충격을 줬다.(최재천)

    "인간이 더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21세기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랄까. AI가 바둑 고수를 물리치면서 인간의 허영심에 균열을 가했다. 그러나 바둑, 체스 같은 특정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것과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AI가 등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튜링 테스트(기계가 사람과 얼마나 비슷하게 행동하고 대화하는지를 검증)를 통과하는 AI는 아직 극소수다. 내가 최 교수와 대화하는 것처럼 AI와 이야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스스로 진화하는 AI도 등장할 것이다."(도킨스)

    ―유전자가 복제·전파를 최우선시한다면 왜 위협 요소인 AI 등장을 막지 않았을까.

    "피임법은 인간이 개발했다. 이로 인해 유전자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복제'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유전자 수준에서는 피임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견하지 못한다. AI 개발도 피임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피임법이 인류에게 나쁘지만은 않았듯이, AI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AI 덕분에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번식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지 않나. 물론 우려하는 대로 AI가 인류를 지배하는 세상이 올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난 미래가 긍정적이라고 믿고 싶다."

    ―트럼프 당선, 영국의 EU 탈퇴 등 국제 정세가 심각하다. 인류가 계속 진보한다는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나.

    "트럼프 당선 소식을 듣고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국도 단순 과반(50%) 국민투표라는 신뢰할 수 없는 절차를 걸쳐 개헌(改憲)이나 마찬가지인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다. 다만 인류 역사는 1년 단위가 아니라 세기 단위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은 19세기보다 분명히 나아졌다. 동쪽으로 흐르는 해류에 코르크를 띄웠다고 상상해보자. 코르크는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나."

    ◇진화론 '선교'는 과학자의 몫

    리처드 도킨스
    리처드 도킨스

    ―종교와 전쟁을 벌였는데.

    "삼라만상을 비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종교·미신과 계속 싸워왔다. 과학적 설명은 오해·무지의 안개를 걷어내는데, 종교는 안개를 드리운다. 무신교 국가라면서 '수령님교(敎)'를 믿는 북한은 지금 어떤가. 문명화된 사회의 똑똑한 사람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

    ―미국은 창조설이나 이와 비슷한 '지적설계론'을 교과서에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계속 논쟁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은 베스트셀러였지만 많은 한국인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증거를 보여주면 된다. 증거를 보면 누구든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증거에 관심 없는 불행한 사람들은 빼고서 말이다. 한국은 구한말 선교사 등에 의해 창조설이 넓게 퍼졌다고 들었다. 선교사가 했던 일을 과학자가 못 해낼 리 없다."

    ―외계 생명체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 입장이 바뀔까.

    "지구인과 교신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과학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종교·미신을 믿는다니. 상상하기 어렵다."

    ◇과학자도 노벨문학상 탈 때

    ―책 '무지개를 풀며'에 과학적 사고를 하다보면 문학적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편견이라고 썼다.

    "그렇다. 과학적 세계관은 시적이고 낭만적이다. 과학이 주는 영감 덕분에 아름답고 창조적인 글이 나온다. 이제 과학자도 노벨문학상을 탈 때가 됐다."

    ―가수 밥 딜런도 상을 탔는데, 당신도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 것 같나.

    "내 입으로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 다만 '코스모스' '혜성' '콘택트' 같은 저작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 스티븐 J 굴드,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같은 학자는 살아만 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리처드 도킨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영국인 대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1976년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원제 The Selfish Gene)’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이자 운반자’라는 시각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면서 과학계 스타가 됐다. 이후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등을 펴내며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했다.

    2006년 ‘만들어진 신(원제·God Delusion)’을 펴낸 뒤로 종교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옥스퍼드대에서 ‘대중의 과학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로 있었다. 현재는 옥스퍼드대 뉴 칼리지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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