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뽑기에 빠져드는 청춘들…"도박·게임 중독과 흡사"

입력 2017.01.20 16:01 | 수정 2017.01.20 16:20

어릴 적부터 인형을 좋아했던 대학생 A(22)씨는 요즘 매일 인형 뽑기 기계를 지나갈 때마다 1만~2만원을 넣고 인형을 뽑는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A씨는 “인형 뽑기를 한참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뜨고 있더라”며 “지난 두 달 사이 인형뽑기에 200만원이나 써버려 이제는 자제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인형 뽑기 기계가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가와 번화가에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인형 뽑기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로 20~30대 청춘이 ‘단순한 재미’로 빠져 들었다가 한 달 용돈을 탕진하는가 하면,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인형 뽑기 중독증이 당첨 확률과 성취감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도박이나 게임 중독과 유사하다고 진단한다.
A씨가 최근 두 달간 인형뽑기로 수집한 인형
◇인형 뽑기에 2000만원 쓴 연예인…트렁크 끌며 ‘뽑기 명당’ 순회까지

취업준비생 B씨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끌고 다니며 서울 홍익대 인근을 누빈다. 인형이 유난히 잘 뽑힌다는 ‘뽑기 명당’을 찾기 위해서다. 일부 인형 뽑기 업자들이 일정 시간대에 인형을 뽑아올리는 집게발의 나사를 풀어 인형을 쉽게 뽑을 수 없도록 조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가게를 피해 인형이 잘 뽑히는 ‘명당’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B씨는 “인형이 잘 뽑히는 가게를 발견하면 한 번에 기계 안에 있는 인형을 싹쓸이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를 대비해 트렁크 가방을 챙겨 다닌다”고 말했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인터넷에는 인형 뽑기 중독증을 호소하는 글들이 매일 3~4개씩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여자친구가 인형 뽑기에 빠져 아껴 쓰던 데이트 비용을 전부 인형을 뽑는 데 쓰고 있다. 만날 때마다 3만~4만원을 탕진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인형뽑기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나게 생겼다. 밥도 학식(학교식당)만 먹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가난 그 자체 삶인데 손목을 잘라야 하나”하며 상황을 호소했다.

인형 뽑기 중독은 유명인도 피해갈 수 없었다. 작년 초 가수 현진영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형 뽑기 중독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한때 인형 뽑기에 2000만원까지 쓴 적도 있다”며 “눈을 감아도 눈앞에 삼발이(인형뽑기용 집게)가 있는 것 같았고 천장만 봐도 뭔가 내려오는 느낌이었다”며 환각 증상까지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남들에 비해 지나치게 인형 뽑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 중독증을 의심하고 있다. A씨는 “스스로 인형 뽑기에 중독됐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며 “인형 뽑을 때 느끼는 손맛을 잊을 수가 없어 멈출 수 없게 된다”고 털어놨다.

인형뽑기 기계가 우후숙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주로 대학가와 서울 홍대, 강남 등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젊은층의 취업난이 극심해진 시기와 맞물린다. 인형뽑기에는 큰 돈이 들지 않는 데다, 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 허한 마음을 해소할 데 없는 젊은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 관리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뽑기’로 상호 등록한 업체 수는 880개에 달한다. 집계를 처음 시작한 작년 2월(21개) 대비 42배가 폭증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인형뽑기 가게. 사진=이경민 기자

◇ 도박·게임 중독과 흡사한 인형 뽑기...취업난 피해 손쉬운 성취감에 빠져

전문가들은 인형 뽑기 중독 현상이 도박과 게임 중독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분석했다. 인형이 뽑힐 듯 안 뽑히는 특성 때문에 인형 뽑기에 집착하는 것이 ‘언젠가 대박이 터질 것’을 기대하고 빠지게 되는 도박 중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C(26)씨는 “한번 뽑히는 ‘손맛’을 경험하고 나면 그걸 잊지 못한다”며 “왠지 뽑힐 것 같다는 인형을 보면 안 되더라도 될 것이라는 믿음에 정신없이 돈을 넣고 있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게임도 잘하는 사람이 해야 재미를 느끼듯 인형 뽑기도 어느 정도 기술이 있어야 잘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뽑고 나면 인형 한 개 이상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손영화 계명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슬롯머신에 돈을 넣을 때 돈을 잃을 수록 앞으로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며 “이 때문에 도박에 집착하게 되는데 인형 뽑기 중독증에서도 비슷한 심리가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현실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인형 뽑기에 중독된 사람들의 특징도 비슷하다”며 “취업난 등 사회 불안을 겪는 20~30대들이 현실을 피해 손쉬운 성취감을 얻으려다 보니 인형 뽑기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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