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윤동주 없는 윤동주 마케팅'

    입력 : 2017.01.19 03:04

    [탄생 100년, 윤동주 돌아오다] [3·끝] 윤동주를 바로잡자

    윤동주 이름 남용하는 경우 많아
    시인이 대학시절 자주 올랐다며 청운공원 내 조성된 '시인의 언덕'
    유족 측 "아무 관련 없는 장소"
    중국은 龍井 생가 앞 표지석에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 왜곡

    서울 은평구는 지난해 "윤동주가 다닌 숭실학교 후신 숭실중학교 인근에 '윤동주 도서관'을 짓겠다"며 공사에 착수했다. 윤동주가 1935년 숭실학교에 입학한 건 맞지만, 당시 숭실학교는 평양에 있었다.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한 뒤, 1948년 서울 성동구에서 재개교해 용산구를 거쳐 1975년 은평구로 옮겨왔다. 유족은 은평구청장을 만나 "취지는 좋지만 억지로 윤동주와의 연고를 만드는 건 옳지 못하다"며 "도서관 이름에서 '윤동주'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지자체 아전인수식 '윤동주 마케팅'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청년 정신은 하나의 고결한 문화 브랜드다. 그렇다 보니 '청년 윤동주'를 홍보·마케팅 수단으로 남용하는 행태도 속출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를 제대로 기리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치는 이유다.

    유족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은평구는 현재 '윤동주 도서관' 대신 그의 시집 제목에서 따온 '하·바·별·시 도서관' 등을 후보로 놓고 저울질 중이다.

    18일 찾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유족 측이 “윤동주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장소”라며 “‘윤동주’라는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다.
    18일 찾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유족 측이 “윤동주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장소”라며 “‘윤동주’라는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다. /조인원 기자
    지자체의 아전인수식 윤동주 마케팅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청운동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다. 2009년 종로구청이 청운공원 내에 조성한 것이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가 누상동 하숙집에서 두 달 정도 지내는 동안 근처 이 언덕에 자주 올라 시상을 가다듬었다"는 게 이유였다. 유족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는 "기록에 근거하지 않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며 "큰 고민 없이 숟가락을 얹으려는 심보 같다"고 말했다. 문학 월간지 'See' 민윤기 주간은 "하숙집에서 이 언덕으로 향하는 산길은 급경사인 데다 당시엔 길도 없었을 것"이라며 "윤동주를 종로의 시인으로 삼기 위해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은 "언덕 이름에서 윤동주를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윤동주'는 여전히 명칭에 남아있다.

    ◇윤동주가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중국에선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만들기 위한 노골적인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 앞 표지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있다. 윤동주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70)씨는 "시인이 알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라며 "현지 대학교수 등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서도 윤동주는 중국 국적 조선족 시인으로 소개된다. 지난해부터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감감무소식. 서울시인협회는 4월쯤 중국 대사관 측에 공식 항의 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15일 찾은 중국 룽징의 윤동주 생가. 생가 앞 표지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15일 찾은 중국 룽징의 윤동주 생가. 생가 앞 표지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룽징=특별취재팀

    ◇윤동주 作?… 인터넷 떠도는 엉뚱한 詩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윤동주 작품으로 둔갑해버린 시도 여럿이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 대표적인 예.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말들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시인데, 언론사들마저 윤동주 작품이라며 잘못 인용하고 있다. 이 시를 쓴 사람은 뇌성마비 장애인 김준엽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 작사·고승하 작곡으로 발표된 가수 안치환의 '편지'(1997) 역시 마찬가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로 시작되는 이런 시를 윤동주는 쓴 적이 없다. 고승하(70)씨는 "1985년쯤 문방구에서 팔던 학생용 노트 표지에 '윤동주의 시'라고 적힌 글을 보고 곡을 붙였는데 노래가 발표된 뒤 1~2년 뒤부터 여러 지적이 들어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부터 '작자 미상'으로 곡 정보를 수정했지만, 여전히 잘못된 내용은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2012년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제1회 윤동주 시 작곡 경연대회' 1등 수상작은 이 잘못된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였다. 최근 윤동주 시로 잘못 알려진 용례에 대한 글을 집필하고 있는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윤동주가 잘못 인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시가 맑고 서정적이기만 하다는 편견 때문"이라며 "윤동주는 긴장감 없는 서정 시인이 아니라 훼손된 세계와 개인의 견고한 관계를 고민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인터넷 자료에만 의존하지 말고 윤동주 시집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고 기억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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