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式 질문과 토론… 잠자던 교실이 깨어났다

입력 2017.01.17 03:03 | 수정 2017.01.17 09:03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7] '하브루타 교육' 도입한 전남 벌교高 교실 가보니

강의 들으면 5% 기억에 남지만 서로 가르쳐주면 90%가 남아…
학생들 "서로 대화·반박하며 다양한 풀이법 스스로 익혀"
교사들 "학생들 창의력 살아나 수업하는 게 행복해졌어요"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 사람아…."

16일 오후 전남 보성군 벌교고. 1학년생 20명이 황금찬 시인의 시 '꽃의 말'을 낭독했다. 국어 '배려하는 말하기' 단원에 대한 보충 수업이었다. 김공록 국어 수석 교사가 "자, 시를 읽고 떠오르는 질문을 10개씩 만들라"고 했다. 학생들은 A4 종이가 넘치게 질문을 써내려 갔다. '꽃 같은 말이란 어떤 말일까' '고운 말이 꽃 같은 말이라면, 나쁜 말은 무슨 말일까' '왜 시인은 마지막에 말줄임표를 썼을까'…. 5행짜리 짧은 시에서 학생들은 100가지가 넘는 질문을 만들어냈다.

이때 김 교사가 "가장 좋은 질문을 각자 2개씩 뽑아 짝 토론을 시작하세요" 하자,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앉았다. 이때부터 교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마를 맞대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짝이 말할 때마다 까르르 웃거나, 목소리 높여 언쟁하는 학생들까지 제각각이었다. 김윤진양과 박정규군은 '꽃 같은 말만 하고 세상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토론하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정규군이 "선한 말만 하고 살 수 있다"고 하자 김윤진양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맞섰다.

친구와 짝지어 수업 내용 논쟁 - 16일 전남 벌교고에서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짝을 지어 ‘하브루타’식 토론을 하고 있다. 하브루타는 공부한 내용에 대해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질문하고, 반박하는 유대인식 교육 방법이다. 벌교고는 2년 전 하브루타 수업을 도입했다.
친구와 짝지어 수업 내용 논쟁 - 16일 전남 벌교고에서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짝을 지어 ‘하브루타’식 토론을 하고 있다. 하브루타는 공부한 내용에 대해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질문하고, 반박하는 유대인식 교육 방법이다. 벌교고는 2년 전 하브루타 수업을 도입했다. /벌교=김영근 기자
벌교고 학생들은 평상시 수업 시간에도 이렇게 짝을 지어 토론하고 논쟁한다. 이른바 '하브루타' 교육 방식이다. 하브루타의 핵심은 '2명씩 짝을 지어 파트너십으로 공부하는 것'. 하브루타라는 말은 '친구'라는 히브리어 '하베르'에서 유래했다. 교사는 학생들이 토론하다 막혔을 때 대답해주는 정도만 개입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유대인들의 창의성이 '하브루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벌교고가 하브루타를 도입한 것은 2년 전이었다. 당시 이성렬 교장은 학교를 바꿀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즈음 하브루타에 대한 연수를 받고 '아, 이게 답이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이후 벌교고의 모든 교사가 하브루타 수업 모형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벌교고가 전 과목, 모든 수업을 하브루타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국어와 사회, 과학 등에서 활발하게 하브루타를 활용한다. 질문 만들기, 친구 가르치기, 비교하고 논쟁하기 등 여러 가지 하브루타 수업 방법 중에서 교사가 단원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 진행한다.

설운용 사회 교사는 "강의를 들으면 5%밖에 기억에 남지 않지만, 서로 가르쳐주면 90%가 기억에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학생들끼리 서로 설명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고 다양한 풀이법을 알게 돼 학습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브루타를 도입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학교 안팎에서 "많이 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자는 학생이 크게 줄었다. 김공록 교사는 "예전엔 수업 시작 5분 지나면 애들 절반이 자고, 10분 지나면 3분의 2가 잤다"며 "하브루타를 하면 애들이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수업하는 게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또 "남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려면 생각을 해야 해서 두뇌가 끊임없이 활동할 수밖에 없다"며 "하브루타를 꾸준히 하면 아이들의 잠자는 뇌가 깨어나고, 창의성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학년 최진군은 "토론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알 수 있어 좋다"며 "수업이 엄청 활기차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연세대에 입학한 정예일씨는 작년 '전국 대학생 독서 토론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씨는 "고등학교 때 일상적으로 토론하면서 자기를 표현하고, 내 생각을 꺼내놓는 데 익숙해졌다"며 수상 비결이 바로 '하브루타'라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