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단선적 '친일' '매국' 시각으로 국제관계 헤쳐가겠나

조선일보
입력 2017.01.16 03:19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외국 공관 앞에 논란이 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윤 장관과 외교부를 '친일파'로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은 논평에서 윤 장관을 일본 아베 총리의 대변인에 빗대었다. 일부 의원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매국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비판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대일(對日) 외교 실패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과거사와 현실 외교 관계를 분리하지 않은 이 선언은 애초에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2015년 12월 갑자기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부끄러운 외교 U턴이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은 바로 이 과정에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친일파'라서 이 합의를 맺은 것은 아니다. 정부 스스로가 다른 누구보다 대일(對日) U턴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 관계는 우리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충돌에서 한국이 계속 중국 쪽으로 기운다고 판단한 미국은 한·일 관계의 복원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체제를 동아시아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위안부 합의는 우리 정부가 원했던 것만은 아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더 컸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위로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것은 우리 외교의 숙제 중 하나였다. 일본의 국가적 책임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이것만은 거부해오다 이번에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내는 데 동의했다. 액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 국민 세금'이란 의미가 적지 않은데도 '10억엔에 팔아먹었다'는 단선적인 폄훼가 판을 치고 있다. 외교 관계에서 때로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더 크고 중요한 국익을 위해서다. 그때마다 '친일' '매국'이라면서 단세포적이고 감정적인 비난을 한다면 나라가 앞으로 갈 수 없다. 소녀상은 어디에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공관 앞에 세우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재외공관이 같은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일본 문제의 근본은 우리 국력이 모자란 것이다. 일본을 능가하려면 국민 모두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시위로 감정만 분출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우리 정치인들이 일본 정치인들보다 더 냉정해지고 주도면밀해지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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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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