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피눈물은 속으로 흘리는 것이다

입력 2017.01.14 03:04

김태훈 여론독자부장
김태훈 여론독자부장
사과는 진심을 담아야 제대로 한 것이 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두고 11일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죄조차 받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댄 근거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죄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합의는 무효라고 단언했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긴 하다. 개인끼리 건성으로 사과했다가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국가 간에 하는 사과에도 진심이란 게 필요한가. 역사적으로 국가 간 사과는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날 때가 많았다. 삼전도에 나간 조선의 인조는 뭘 그리 잘못해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렸는가. 그냥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심기 건드린 게 이유였다. 청 태종도 무력을 앞세워 사죄를 요구하고 관철했을 뿐, 인조의 진심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일본이 우리와 위안부 합의를 하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한 것도 위안부 관련 그간의 여러 망언으로 판단할 때 진심인지 의심스럽다. 한·미·일 공조 복원을 원한 미국이 끼어들어 갈등을 봉합하라고 하니 그나마 그렇게라도 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애초에 한·일 관계 정상화라는 전략적 고려 아래 사과하고 합의한 것을 두고 진심을 따지면 외교를 윤리와 혼동한 꼴이 된다.

사과에 인색한 일본을 비난할 때 우리는 독일을 예로 든다. '독일은 틈만 나면 나치 만행을 무릎 꿇고 사과하는데 너희는 뭐냐'고 힐난한다. 그런 독일이 실은 사과를 가려가며 했다는 걸 아는가.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옛 식민지 나미비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일은 그 나라에서 1904년부터 4년여간 7만5000여명을 학살하고도 100년 넘게 사과는커녕 학살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다가 지난해 비로소 사과했다. 폴란드처럼 무시하기 힘든 피해국과는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두 나라 미래 세대를 가르치자고까지 하면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지난 5일엔 나미비아 부족장들로부터 미국 맨해튼 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당했다. 그러니 나미비아인 앞에서 '독일을 본받으라'고 했다간 비웃음만 살 것이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헌화하다 무릎을 꿇고 있다. /조선일보 DB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헌화하다 무릎을 꿇고 있다. /조선일보 DB
국가 간 사과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필요하면 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마땅히 사과할 일도 무시해버린다. 우리 마음에 흡족한 수준의 사과를 받으려면 상대방이 그런 수준의 사과를 할 필요를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각오를 다지고 담대해져야 한다. 지난해 5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은 일본과 베트남이 그랬다. 일본은 핵폭탄 두 방으로 아이 노인 여성 할 것 없이 22만명이 몰살당하고도 히로시마에 오바마를 세우기 위해 내각·언론·국민이 모두 나서서 "사과는 필요 없으니 오라"고 했다. 베트남도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야심을 드러내자 단호히 미국 쪽에 섰다. 고엽제 사망자 등 전시 피해에 대해 미국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다.

우리에게도 전략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추진할 목표가 있다. 북핵을 해체해 대한민국을 지키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작은 분노와 실망을 견뎌야 한다. 훗날 그 목표를 이룬 우리나라를 일본은 달리 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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