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구례에 영화관·바 갖춘 '신개념 농공단지'… 일자리 생기고, 젊은이들 돌아오고, 폐교가 살아났다

    입력 : 2017.01.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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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4월 문을 연 ‘구례자연드림파크’는 구례 출신 청년들의 일자리가 된 동시에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 됐다. ①작년 여름 록 페스티벌이 열려 인근 순천과 남원에서도 관객들이 몰렸고, ②최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도 늘 붐빈다. ③개장 2주년 기념 축제엔 직원뿐 아니라 주민들도 함께 참여했다. ④구례자연드림파크가 활기를 띠자 유치원생들의 소풍 단골 코스가 됐다. /아이쿱생협 제공
    지난 4일 오후 전남 순천 구례구역에 내려 택시로 15분 정도를 달리자 '구례자연드림파크'가 나타났다. 도로 양쪽으로 논밭 풍경이 펼쳐지다 갑자기 등장한 놀이공원 같았다. 택시기사는 "요즘 이곳으로 오는 손님들 덕에 매출이 10% 정도 늘었다"고 했다. 구례군 용방면 허허벌판에 들어선 농공단지 14만9000여㎡(약 4만5000여평)는 지난 2014년 4월 문을 열었다. 과자·막걸리·김치 공장과 커피숍·펜션·게스트하우스·라운지바 등 17개 회사와 점포가 들어섰다. 아이쿱(iCOOP) 생협에서 지난 2012년부터 1000억여원을 들여 산업단지를 조성한 것이다. 점심시간이어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공원을 산책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상영관 두 개를 갖춘 극장 '구례자연드림시네마'에선 최근 개봉한 '씽'과 '마스터' 같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날 영화관을 찾은 한 주부는 "전에는 볼 일이 있으면 읍내로 나갔는데 요즘은 영화도 볼 겸 이곳으로 온다"며 "이 극장이 생기기 전엔 개봉 영화를 보려면 순천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구례에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전남 구례는 지난 2011년 군 단위로는 이례적으로 인구 감소가 멈췄다. 그해 사망자 수는 출생아 수보다 2배 이상 많았으나 산업단지를 만들기로 결정한 뒤 청·장년층이 들어오면서 인구 감소를 막았다. 실제로 구례의 20~49세 인구는 2014년부터 전입 인구가 전출 인구를 넘어서고 있다.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일하는 직원 511명의 평균 연령은 38.6세. 이 중 약 83%가 구례에 살고 있다. 나머지는 인근 순천과 남원에서 출퇴근한다. 구례군청 도시경제과 정양조 과장은 "최근 몇년간 귀농·귀촌 열풍도 있었지만 구례자연드림파크가 생기면서 일자리가 생기자 구례 출신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며 "인구가 2만7000여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노인인 구례에 활기를 불어넣기 충분한 수"라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2030

    자연드림파크 문화사업팀에서 일하는 박종섭(38)씨는 구례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가 헬스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4년 전 고향인 구례로 돌아와 자연드림파크에 취직했다. 당시 대학 졸업장도 토익 점수도 없는 서른넷 늦깎이 신입사원이었다. 박씨는 "서울에서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살며 월세 내고 생활비 쓰면 남는 돈이 없었다. 빈털터리로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수습직에 지원했다"며 "변변한 스펙 하나 없던 나에겐 구례가 기회의 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원룸을 얻어 독립했다. 회사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한 푼도 없이 고향에 왔는데 막상 일자리를 구하니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지더라고요. 서울 살 때는 움직이는 모든 게 돈이잖아요. 여기서는 적게 벌어도 적게 쓰면 되니까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행복합니다. 서울에선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여기에선 월세 살아도 부담스럽진 않으니까요. 돈 모으는 재미가 생겨요."

    위치도
    구례자연드림파크엔 박씨처럼 취업이나 대학 진학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유독 많다. 기획팀 김현주(여·27)씨는 광주에서 재작년 8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김씨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에서 좋은 일자리라고 하면 공무원이나 농협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거죠. 저는 구례가 고향이라 별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왔는데 요즘은 다른 지역 출신 대학 동기들이 입사를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잦아졌어요."

    이곳엔 사내 커플이 많다. 퇴근 후 영화·마라톤·헬스 등 취미 중심으로 생기는 사내 동호회에서 짝을 만난다고 한다. 지난달에만 세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정재훈(37)·권지현(여·30)씨 부부도 회사에서 만나 결혼한 지 3년째다. 정씨는 "순천에서 대학 나오고 고향엔 일자리가 없어 광양에 있는 제철소에 취업을 했다. 집 유지 비용이 부담스러워 고향 집에서 40분씩 걸려 출퇴근했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일자리가 생기니 여기서 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시골이라 퇴근 후 놀 만한 시설이 도시보다 적은 게 흠이지만 그만큼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권지현씨 역시 광주의 한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그는 "막연히 서울에 있는 여행사에 취업하는 걸 생각했지만 서울에 있었다면 삶이 더 팍팍했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영(34)씨는 대학 졸업 후 광주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이곳 만두 공장에 생산직으로 취직했다. 최씨는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가 열 명은 됐는데 고등학교 때는 세 명으로 줄었다"며 "입사 초기엔 마을 전체에 30대가 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읍내 쪽에 고향 선후배들이 많이 내려와 살고 있다"고 했다.

    꿈틀대는 지역사회

    경제활동인구가 밀려들어 오면서 구례 경제도 꿈틀대고 있다. 이날 저녁 구례 읍내 한 커피집은 퇴근 후 모여든 20~30대 남녀로 10석이 꽉 찼다. 2년 전엔 '롯데리아'가 처음 생겨 중·고생 하교 시간대에 이곳이 붐빈다고 한다. 읍내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52)씨는 "저녁 7시만 돼도 읍내가 한산했었다"며 "50~60대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30~40대 손님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했다.

    구례용방농공단지
    구례자연드림파크가 들어서기 전인 2012년 구례용방농공단지 모습. /아이쿱생협 제공
    초등학교는 폐교 위기를 넘겼다. 용방초등학교는 2014년까지만 해도 전교생이 3학급 16명뿐이었다. 두 학년씩 반을 섞어 운영했다. 교감도 부임하지 않은 지 오래였고 인근 초등학교와의 통·폐합 얘기가 오갔다. 그해 4월 자연드림파크가 인근에 문을 열면서 직원 자녀들이 이 학교로 대거 전학을 왔다. 통·폐합은 없던 일이 됐고 교감 자리도 다시 생겼다. 용방초 김시중 교감은 "20명을 넘지 않던 전교생이 2015년 30명을 넘기면서 폐교 얘기가 쏙 들어갔다"며 "부모를 따라 전학 오는 학생들이 매년 몇 명씩 있다"고 했다. 이곳 병설 유치원 역시 원생이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 2006년 문을 닫았으나 8년 만인 2014년 원생 10명이 입학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자연드림파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용방면 죽정리에는 빈집을 찾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장 장임봉(52)씨는 "마을 63가구 중 15가구는 젊은 사람들"이라며 "요즘은 마을에 들어오고 싶어도 빈집이 없어서 못 온다"고 했다. 50~60대가 주축이어서 사실상 '장년회'였던 마을 청년회도 부활했다. 토지면에 사는 박충현(36)씨는 "벼 수확할 때는 연차를 쓰고 마을 어르신 일손을 돕기도 한다"며 "아직은 마을마다 청년들이 두세 명 정도뿐이라 면 단위로 20~30명씩 청년회를 만들어 마을 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깔끔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 수요 때문에 원룸촌도 생겼다. 구례읍 백년리에는 최근 몇 년 사이 4~5층짜리 원룸 건물 서너 채가 지어졌다. 지금도 원룸 17개가 들어가는 건물이 공사 중이었다. 대부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수준. 주로 구례에 파견된 공무원이나 구례자연드림파크에 취직한 타지역 출신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 구례공인중개사사무소 류형권 대표는 "귀농·귀촌 바람과 자연드림파크 개장이 맞물려 최근 구례 부동산 시장이 살아났다"며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깔끔한 원룸이나 아파트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했다. 구례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산이고운 아파트'는 2014년 분양 당시 석 달 만에 172가구가 모두 소진됐다.

    구례군에서는 농촌 지역의 고질적 고민인 '인구 절벽'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군청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구례자연드림파크에 67억원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구례의료원엔 2011년 사라진 산부인과 전문의가 2015년 새로 왔다. 한광일 구례의료원장은 "산부인과가 운영되려면 매년 250명은 새로 태어나야 하는데 구례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워 사실상 의료 사각지대였다"며 "생협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줘 광주에서 전문의를 데려왔다"고 했다. 아직 시설과 의료진 부족으로 분만까지는 할 수 없지만 구례 지역 임신부들이 정기검진을 받으러 순천이나 광주까지 나가는 불편은 사라졌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민경진 센터장은 "단순히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만 주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생활 편의 시설도 만들었다"며 "직원들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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