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윈터가 '아름답다' 호평한 남자, 8년째 런던패션위크 서다

    입력 : 2017.01.12 03:04

    [2017 세계 누비는 젊은 예술가] [5·끝] 패션 디자이너 최유돈

    국내 남성복 회사서 RCA로 유학, 영국 의류 '올세인츠' 수석 발탁
    가디언서 10대 핵심 쇼로 꼽기도… 옷에 건축·회화 등 예술 녹여 유명

    최유돈
    최유돈(41·사진)은 한국보다 영국에서 더 유명한 패션디자이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졸업 전 영국 의류 브랜드 '올세인츠'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됐고, 졸업 작품은 런던의 유명 편집 매장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매진됐다. 2010년 세계 4대 컬렉션으로 불리는 런던패션위크에 데뷔해 14회 연속 참가했다.

    데뷔 이듬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독설가 애나 윈터 미국 보그 편집장으로부터 "아름답다"는 호평을 받았다. 2014년 2월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최신 트렌드를 완벽하게 섭렵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컬렉션을 런던패션위크 '10대 핵심 쇼'로 뽑았다. 당시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의 쇼가 함께 선정됐다. 예술성뿐만 아니라 상업성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영국 백화점 '펜윅'과 편집 매장 '조셉'을 비롯해 홍콩·대만·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집트에서도 그의 옷이 팔린다.

    정작 최유돈은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전화기 너머에서 웃었다. 다음 달 런던패션위크를 앞두고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 번 떴다가도 언제 망할지 모르니까요. 런던패션위크에 나가서 일정표를 보면 오래 해오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디자이너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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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패션위크 무대 뒤에서 모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최유돈. 그는 스스로에 대해“유리 멘털(유리처럼 마음이 약하다는 뜻)이면서도 독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최유돈
    그는 반년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들고 쇼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람쥐 쳇바퀴"라고 표현했다. 데뷔 8년 차인 지금도 "스트레스에 따른 피부 알레르기와 야근이 줄었을 뿐 남들 앞에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은 처음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창조의 자유'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는 무대가 패션쇼라는 얘기다.

    디자이너 최유돈의 인생은 2004년 RCA 입학을 기점으로 180도 달라졌다. 유학 전 연세대 의류환경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남성복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지금은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 '유돈초이'의 경영자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택한 건 "나이 들어서도 계속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외국 패션쇼를 보고 디자인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그건 대학 졸업반 정도만 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유돈이 선보인 올해 봄·여름 의상.
    최유돈이 선보인 올해 봄·여름 의상. 부드러운 선과 비대칭의 사선 재단이 특징이다. /최유돈
    분야도 여성복으로 바꿨다. 최유돈은 "남성복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면 그만이라 편했다"며 "직접 입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옷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옆이 깊게 파인 치마에 남자 양말과 구두를 매치하는 등 남성복 색채를 남겨두고 있다.

    최유돈은 다방면의 예술가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디자인에 지능적으로 녹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 달 런던패션위크에 출품할 디자인은 "장식은 범죄"라고 했던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 사진가 프란체스카 우드맨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쇼를 구성한 적도 있다. 최유돈은 이들이 "쇼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작가들"이라며 "매번 리서치(조사·연구)를 통해 영감을 얻을 예술가들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고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도서관·미술관 자료는 물론 신문 기사, 웹 서핑, 친구와의 대화까지 모든 것이 참고가 되기 때문에 늘 안테나를 열어두죠."

    최유돈은 '누군가 입어야 패션'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디자이너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새해엔 비즈니스를 더 키울 것"이라며 "프랑스·이탈리아 등 영국이 아닌 유럽 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유돈의 2017년… 이번 쇼는 '건축가 루스']

    다음 달 런던패션위크 쇼를 준비하는 최유돈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루스의 정신에 따라 불필요한 선을 배제한 여성복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쇼에 출품한 작품을 바탕 삼아 국내 잡화 브랜드 덱케(DECKE)와 함께 디자인한 제품을 4월쯤 출시한다. 가을에는 영국 존 루이스 백화점과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 독점 판매하는 협업도 준비 중이다. 한국·영국 고급 호텔의 직원 유니폼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한 방안이다. 최유돈은 "판매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만 추구하는 접근은 구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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