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코리안 드림' 꾸는 술탄 티무르의 후예들

  • 이택순 前 경찰청장

    입력 : 2017.01.12 03:05

    실크로드에서 만난 우즈벡人들, 한국 여행단 뜨겁게 맞아줘
    티무르의 후예지만 가난한 그들 "한국, 성공 법칙 배울 기회의 땅"
    중앙아 호령하게 그들 도와주고 함께 한국어로 말하며 여행하고파

    이택순 前 경찰청장
    이택순 前 경찰청장
    지난해 봄 실크로드 자동차 여행 중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을 통과하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세 최고의 정복자, 풍운의 황제 티무르(1336~ 1405)의 후예들이 세운 유목민족의 나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경의 작은 마을 '부즈'란 곳에 들렀다. 바로 직전에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을 통과했기 때문에 현지 통신과 내비게이션 기능을 보완하는 스마트폰 유심(USIM)을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주차해 있는 우리 일행의 자동차를 보고 신기했는지 현지인들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둘러싼 20여명이 "안녕하세요!" 한국어 한마디와 우즈베크어로 말을 걸어왔다. 예정에 없던 곳에 들르면 될 수 있으면 현지인과 접촉을 피해야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갑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이곳은 이슬람 지역이라 혹시 "저들 뒤에 폭탄 테러리스트라도 있는 거 아닌가? 그들의 풍습을 해친 것이 아닌가?" 이런저런 의심을 해봤으나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따라온 P군이 통역해줬다. "우리 마을에 처음 온 한국인을 정말 환영하며 영광이다! 꼭 하루라도 머물고 가기를 바란다."

    이어서 나이 지긋한 노인이 팔을 끌어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포장마차 속에서 소박한 즉석 환영회가 벌어졌다. 물과 음료수 빵 보드카를 가져온다. 심지어 한 중년의 남자는 통역 P군에게 "내 딸을 줄 테니 여기서 살라"고 진지하게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치 한류 스타처럼 유목민족의 환대와 뜨거운 대접을 받고 떠났다.

    다음날, 도시 전체가 중세 박물관인 사마르칸트를 찾아 떠난 길. 덜컹거리며 앞에서 달리던 차가 멈춰 서더니 운전자가 뛰어왔다. "한국에서 일했다. 한국 번호판을 보니 무척 반갑다. 어디로 가느냐? 우리가 길을 안내하겠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망막한 초원과 사막 모든 지역을 이들의 자발적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한두 사람의 호의로는 불가능했다.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인상으로 뚜렷이 각인되어 있어서 가능했다. 전쟁광 '술탄 티무르'의 후예들에게 한국은 어떻게 이런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을까? 다민족 국가인 그곳은 20만여 명의 고려인이 2차대전의 혼란 중에 강제이주를 당한 한민족 비극의 역사가 서려 있는 땅이었다. 근면하고 부지런한 고려인의 평소 이미지에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다녀간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이 일군 성공 스토리 때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25년이 흘렀지만 국민소득은 연평균 2500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들에게는 한국에서 노동할 기회를 잡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 역전 드라마였다. 3년 만 한국에서 일하면 약 30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손에 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어에 능통한 솔젠(38)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한국에 취업해 모은 돈으로 귀국해 집을 장만했다. 중형 콤비차를 구입해 작은 여행사를 차리고 여행 가이드를 겸했다. 솔젠은 한국에서 단순히 노동의 대가만 받아간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도 배워 간 것이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와 TV를 러시아로 수출해 큰돈을 벌었고 무역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중세 실크로드 상인의 유전자가 되살아난 것이다. '코리안 드림'의 전형적 사례였다.

    그곳에선 지금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서 일할 수 있는지, 자기를 한국에 불러 줄 수는 없는지가 궁금한 이들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온 이들이 한국 시골길에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성공의 꿈을 꾼다.

    외국인 노동자는 단순히 노동만 하고 월급만 받는 기계 같은 존재인가? 우리는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처절하고도 소중한 꿈 '코리안 드림'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국가는 일천한 민주주의 경험, 부족한 경제 인프라로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이룬 솔젠처럼 시장경제의 성공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희망이 용솟음친다. 친한파 유목민이 중앙아시아의 지도 세력으로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들과 한국어로 편하게 대화하며, 정복황제 '티무르'의 역사 유적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지역을 여행하는 또 다른 실크로드의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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