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관저 근무

    입력 : 2017.01.11 03:11

    윈스턴 처칠은 천성적으로 게으른 정치인이었다. 늦잠꾸러기에다 술과 담배를 즐겼다. 영국 총리 시절에도 늦게 일어나 침대에서 밥 먹고, 현안 보고를 받았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위스키 마시고 오전 내내 침대에 있는 사람에게 영국을 맡길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은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정치인이었다. 2차 대전 때는 총리 관저 부근 지하 벙커에 작전상황실을 만들고 이곳에 머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국 대통령 관저는 백악관 중앙 본관 3층에 있다. 백악관 웨스트 윙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장·대변인실, 이스트 윙에는 대통령 부인 집무실이 있다. 대통령 관저에서 집무실까지는 45초.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서 좋은 점은 사무실과 집이 가까워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보통 오후 6시 퇴근하는 오바마는 관저에 가서 자정까지 일했다. 각 부처에서 올라온 서류와 메모를 읽었다 한다. 

    [만물상] 관저 근무
    ▶미국·영국 말고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도 관저는 근무 공간이자 생활공간이다. 긴급한 국가 현안이 생기면 침실에서 보고받고 참모들 불러 회의도 연다. 역대 한국 대통령도 청와대 관저에서 일을 봤다. 관저에서 참모들과 아침·저녁 회의, 휴일 업무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이라크 무장 단체에 의한 한국인 납치 사건 때 관저에서 보고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답변서에서 "2014년 4월 16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관저에 있었던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어떻게 근무했느냐다. 그날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라 사건 상황 보고를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에 1부씩 보냈다. 관저에는 육군 중령이 자전거 타고 가 보고서를 전했다.

    ▶그날 대통령이 관저에서 만난 사람은 3명뿐이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그리고 윤전추 행정관 등 심부름하는 비서들이었다. 실제 국정을 담당한 사람은 한 명도 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도 일주일에 한 번도 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박 대통령이 잘했다고 세월호를 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할 도리는 다해야 한다. 청와대가 정상이라면 세월호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안 오후 2시경에는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참모들과 머리를 맞대야 했다. 그런데도 "관계 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 오보가 겹쳐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남 탓만 했다. 이것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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