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립싱크 K팝 유감

    입력 : 2017.01.11 03:08

    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몇 해 전 난생처음 걸그룹의 콘서트에 갔다.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아저씨의 '팬심(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일컫는 조어)'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 청소년 수천 명이 변성기 지난 굵은 목소리로 한꺼번에 고함치는 모습은 어쩐지 낯설고 어색했다. 하긴 그들도 불혹(不惑)의 아저씨가 곁에서 함께 열광할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은 설렘에 들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당혹스러운 심경이 되고 말았다. 걸그룹 멤버들 가운데 3명만 라이브로 열창했을 뿐 나머지는 사전에 녹음된 음원에 입 모양을 맞추는 립싱크(lip sync)로 노래 부르는 시늉만 내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음반을 그대로 틀면 립싱크라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조금 더 서툴면서도 생생하게 녹음한 별도의 음원을 사용했다. 나중에는 어떤 멤버가 실제로 노래하는지, 립싱크로 처리했는지 확인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결국 후반부는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서둘러 공연장을 나오고 말았다.

    한국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이 세계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을 'K팝'이라고 부른 지도 꽤 오래됐다. 2012년 빌보드 2위까지 올랐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점으로 잡기도 하고,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공연을 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경연(競演)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세계 진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 수출 상품'인 아이돌 음악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공연이나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립싱크로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연말연시 특집 방송 역시 '립싱크의 홍수'이긴 마찬가지였다.

    빠르고 격렬한 댄스음악 위주의 아이돌 음악은 군무(群舞)와 음악이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엔터테인먼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설령 립싱크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경우에는 노래나 콘서트로 볼 수 없다. 그토록 춤 동작이 중요하면 '현대무용', 의상이 핵심적이라면 '패션쇼', 언어 외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팬터마임'이라고 부르면 된다.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데 수족관의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린다면 현란하게 카드를 섞으면서 눈속임하는 '타짜'와 별반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방송계 비리 사건이 터질 적마다 '립싱크 금지'를 떠들썩하게 대안처럼 내놓더니 요즘에는 그마저 사라졌다.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연예 기획사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상황도 원인이다. 하지만 허름한 식당도 식재료 원산지 표시를 하는 마당에 눈앞에서 즐기는 음악이 팔딱거리는 라이브(live)인지 사전 녹음된 '통조림 음악'인지도 모른다면 그처럼 서글픈 일이 없다. 한류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TV 가요 프로그램의 '라이브 표시'는 최소한의 의무 사항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