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중국의 小國 외교

    입력 : 2017.01.11 03:09

    안용현 국제부 차장
    안용현 국제부 차장
    2011년 베이징대에서 연수할 때다. 중국어를 배우던 8개국 유학생들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교내에 '8국연합(八國聯合) 공연'이란 문구가 들어간 플래카드를 내걸려다가 '봉변'을 당했다. 지나가던 한 노(老)교수가 "어디 감히 이따위 것을 붙이느냐. 당장 떼라"며 노발대발하더니 "8국연합이란 말이 1900년 8국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을 떠올리게 한다. 악몽 같은 역사를 왜 건드리느냐"고 따졌다. 당시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 등 8국은 의화단 운동 때문에 중국 내 자국민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이유로 공동 출병해 베이징과 톈진 등을 공격했다. 베이징이 처음으로 서양 군대에 짓밟혔고, 서태후는 시안(西安)으로 달아났다.

    패권국의 침략을 받았던 역사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내정 불간섭'을 중국 외교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는 배경이 됐다. 저우언라이 당시 외교부장은 1955년 4월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 회의)'에서 내정 불간섭 등을 앞세운 비동맹 외교로 제3세계 국가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 덕분에 중국은 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4일 베이징 외교부 감람청에서 송영길 의원(가운데)등 민주당 의원 7명을 만나 사드 문제 등을 논의했다. /베이징=공동취재단
    그러나 최근 몸집이 커진 중국은 내정 불간섭이라는 외교 원칙을 잊었거나 저버린 듯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2014년 1월 아프리카 남수단의 내전(內戰)에 대해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수단 유전(油田)의 최대 투자국인 중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정에 간섭하겠다는 뜻이었다. 중국은 작년 1월 반(反)테러법을 통과시켜 중국군의 해외 테러 현장 파병을 합법화했다. 지금 중국군의 해외 파병 규모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포함해 어느덧 3만 명에 육박한다.

    지난달 만난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관련, "올해 한국 대선이 사드 문제를 바꿀 기회"라고 말했다. 집권 가능성이 커진 야당이 사드 배치 연기나 철회를 언급하는 한국 정치 상황을 100% 활용하겠다는 의미였다. 주중 한국 대사도 만나주지 않던 왕이 부장이 최근 방중한 야당 의원단을 환대하고, 부국장급에 불과한 중국 외교부 관리가 서울을 휘젓고 다니며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만나 "단교(斷交) 수준의 고통" 운운하며 협박한 것은 우리 내정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중화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는 (한국) 주권 행위가 아니다" "가혹한 보복을 할 것"이라는 말로 협박 수위를 높였다. 중국 군용기 10여 대가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4~5시간가량 침범한 것도 '사드 겁박'의 일환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가훈은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이라 한다. 리커창 총리도 2013년 3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패권국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깊이 느낀 바가 있다"며 이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 행태는 100년 전 당했던 일을 그대로 이웃 나라에 강요하는 꼴이다. 과거를 모르는 나라가 소국(小國)이다. 대국(大國)임을 자처하는 중국이 '소국 외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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