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 기록적인 한파(寒波)와 눈폭풍이 몰아치면서 동사자(凍死者)가 속출하고 여객기·화물선 운항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상 한파의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제트기류 약화가 거론되고 있다.
8일(현지 시각)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 북동쪽 코스트로마주(州) 기온이 이날 오전 영하 41도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성탄절'이었던 지난 7일에는 모스크바의 기온이 영하 29.9도로 120년 만에 가장 낮은 성탄절 기온을 기록하는 등 러시아에선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모스크바 인근 일부 지역은 난방이 끊겨 주민 1만2000여 명이 추위에 떨었고 셰레메티예보 등 국제공항은 항공기 수십 편이 결항됐다. 독일 작센주(州)도 영하 31.4도까지 떨어졌다. 터키에서는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내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해협의 화물·여객선 통행이 중단됐다고 국영 아나톨루통신이 보도했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도 최대 1m20㎝에 달하는 눈 때문에 국제공항이 폐쇄됐다.
이탈리아·그리스 등 겨울철에도 따뜻한 남유럽 국가 역시 한파의 타격을 받았다. 그리스 북부는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졌고, 20년 만에 최악의 한파가 닥친 이탈리아에선 중부와 동남부에 쏟아진 폭설로 일부 지역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로마·시칠리아 등에선 항공기 운항이 중단됐다.
동사자도 속출했다. 폴란드는 지난 주말에만 최소 10여 명이 사망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 한 건물 지하에서 동사자가 발견되는 등 추위로 8명이 사망했다. 체코에서도 노숙자 등 3명이 사망했다.
발칸반도와 남·동유럽을 떠돌고 있는 난민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불가리아 남동부 산지에서는 최근 이라크·소말리아 난민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선 아프가니스탄 등 난민들이 버려진 창고 등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세르비아 지부 관계자는 "난민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며 "앞으로 며칠이 고비"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말 동안 노숙자들에게 침낭을 나눠주고,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바티칸 소유 차량의 문을 잠그지 말라고 지시했다.
미국도 한파와 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선 폭풍을 동반한 폭우로 3명이 사망했다. 네바다주는 도로가 침수되고 정전 사태가 잇따르는 등 20년 만에 가장 큰 홍수 피해를 입었다. 브라이언 샌도벌 네바다 주지사는 주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매사추세츠주 일부 지역에는 이날 45㎝ 눈이 내리는 등 동부 지역은 폭설 피해가 속출했다. 뉴욕주에서 앨라배마주로 이어지는 도로도 대부분 마비됐다. 25.4㎝의 강설량을 기록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폭설과 강추위로 초·중·고가 다음 주 초까지 휴교에 들어갔다. 미국 기상청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13년 동안 5차례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이 물과 식료품 등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면서 미국 각지에서는 상점의 우유와 계란이 동나는 등 생필품 품귀(品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번 한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제트기류 약화로 북극 지방의 한랭기류인 '폴라 보텍스'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이 주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폴라 보텍스는 북극·남극 지방을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최대 지름 6000㎞의 찬 공기로, 기온은 영하 50~60도에 이른다. 평상시엔 제트기류 때문에 극지방에 갇혀 있는데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남쪽으로 한기를 내려보낸다. 미국 럿거스대 제니퍼 프랜시스 교수는 "온난화 현상으로 '폴라 보텍스'의 찬 공기가 유럽과 북미 지역에 침투한 것"이라며 "북극 온난화가 지속되면 앞으로 이 소용돌이 기류의 움직임이 더욱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온난화로 북극 얼음 면적이 줄어든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음은 태양복사에너지의 80% 이상을 반사하지만 바닷물은 이 에너지의 5~10%만 반사하고 대부분 흡수한다. 얼음이 줄어들면 북극과 중위도 지역 간 기온 차이가 줄어 제트기류가 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