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롯데의 보바스병원 인수가 우려된다

    입력 : 2017.01.10 03:07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경기도 성남시 판교 자락 언덕에 자리 잡은 보바스기념병원은 우리나라 병원사(史)에 이정표를 세운 의료기관이다. 지난 200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활 전문 병원을 표방하고 문을 열었다. 보바스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신경과학자·물리치료사 부부로, 환자 상태에 따른 1대1 맞춤형 재활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런 정신을 잇겠다고 영국 보바스 재단을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보바스 이름을 따왔다.

    재활의료 수가가 낮아서 재활치료가 부실한 상황에서 1대1 맞춤 재활이 등장하자 병원은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550여 병상으로 커졌고, 입원 대기 기간이 있을 만큼 뇌졸중·장애손상 환자가 가장 찾고 싶은 병원이 됐다. 한 해 40억원 정도의 수익도 낸다. 비록 비영리 의료법인이지만 자산 가치가 900여 억원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 병원이 호텔롯데에 인수될 처지가 됐다. 사정은 이렇다. 보바스병원 이사장의 병원 밖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담보 등의 형태로 600억원의 채무가 쌓였다. 이에 병원 재단은 법정관리 형태의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은 병원 재단 이사진 구성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지는 절차를 진행하게 했다. 병원은 결국 입찰에 부쳐졌고, 여기에 호텔롯데가 2900억원을 써 냈다. 경쟁자와 3배 이상 차이 나는 '인수 금액' 제시로 지난해 말 최종 인수합병자가 됐다.

    보바스 기념병원 전경. /조선일보 DB
    호텔롯데가 지난해 회사 사업 목적에 의료사업을 추가하는 정관 개정을 하고, 준비팀을 꾸린 지 반년 만에 보바스병원을 가져간 것이다. 결국 대기업이 비영리 의료법인을 인수한 셈이 됐다. 병원은 애초에 이른바 '흑자 도산'이기 때문에 인수 대금 중 600억원은 채무 갚는 데 쓰이고 나머지 2300억원은 병원 재단에 빌려주는 형태로 남게 된다. 만약 신동빈 롯데 회장이 병원 이사장으로 오면, 주인 행세하며 그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롯데는 병원 입찰에 5000억원을 써내든 1조원을 써내든 당장 나가는 돈은 600억원뿐이었다. 여유 자금이 많은 쪽이 차지하는 입찰이었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법인 인수합병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간을 지난해 5월 국회로 되돌려 보자. 당시 이를 허용하자는 개정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국 의료법인 병원을 사고팔 수 있게 되면 프랜차이즈 병원이 늘어나고,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들이 달려들어 병원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의료법 개정은 없던 일이 됐다.

    롯데는 회생 절차를 통한 정당한 인수이고 사회 공헌의 일환이라고 하나 의료계 안팎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롯데 방식이라면 현재 부도가 나거나 채무에 시달리는 140여 중소 비영리 의료법인 병원들이 죄다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 전국에 의료법인 병원은 1600여 개에 이른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병원을 하지 말라 할 수 없고, 현대와 삼성도 대형 병원을 운영한다. 하지만 그들은 별도의 복지 재단을 세우고 거기에 막대한 출연금을 넣어서 세계적인 병원으로 키웠다. 롯데가 비영리병원을 중간에 채가는 방식으로,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병원 인수를 하도록 놔둬도 되는가. 다른 기업들이 너도나도 따라 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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