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시리아는 독재자들의 희망

    입력 : 2017.01.07 03:03 | 수정 : 2017.01.07 07:27

    노석조 카이로 특파원
    노석조 카이로 특파원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언덕이 넘실댔다.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 표정은 밝았다. 안전모를 쓰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교통 질서가 정연하다. 1994년 100일간 100만명의 인종 학살이 벌어진 나라라고 믿기지 않았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와 지방 여러 도시를 2013년 방문해 며칠 돌아다녔다. 학살 이후 르완다 사회의 변화를 취재했다. 현 정부는 신분증에 종족 기입란을 뺐다. 예전처럼 종족 구분이 정치와 학살에 악용되지 않도록 하려는 예방 조치였다. 학살은 1990년대 르완다의 집권 세력이자 다수 종족인 후투 (Hutu)가 반군이자 소수 종족인 투치(Tutsi)와 내전을 하다 벌어졌다. 후투 정부가 신문과 방송, 교회까지 동원해 투치를 인간이 아닌 '바퀴벌레' '악마'라고 몰며 민간인이든 여자든 아이든 상관 말고 무조건 죽이라 선동했다. 학살이 벌어진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르완다에선 개를 기르지 않는다. 학살 당시 개들이 거리에 쌓인 시체에 입을 댔기 때문이다.

    취재 마지막 날 키갈리의 희생자 추모관에 갔다. 외신 보도물, 범죄 흉기, 희생자 유족의 증언 영상 등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박물관을 나가려는데 한쪽 벽면이 눈에 확 들어왔다. 1920년대 아르메니아 학살, 1940년대 홀로코스트, 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 대학살 장면이 흑백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더는 저 벽에 새로운 사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인류의 비극을 기록한 사진이 또 한 장 르완다 추모관 벽에 걸리게 될지 모른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내전을 벌이면서 정부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국민 20여만명을 죽였기 때문이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인 약 10만명은 병원이나 학교·집 등에서 무방비로 있다가 희생됐다. 북한 김씨 정권처럼 민주적 절차 없이 권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사드는 자신이 속한 이슬람 소수 알라위파(派)에 다수 종파인 수니파가 정치적 위협으로 떠오르자 수니파 반군을 '테러분자'라 규정하고 민간인까지 공격했다.

    아사드는 반군 거점 도시 알레포를 탈환하기 위해 도시를 완전 봉쇄하고 주민 27만여명을 아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의 군대가 화학무기 폭탄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터키 등의 중재로 봉쇄가 일시적으로 풀려 간신히 주민들은 알레포를 탈출했지만, 이는 인도주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아사드 정권의 궁극적인 전략 목표를 위한 조치였다. 도시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 단체와 세계 언론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적극 개입해 아사드 정권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시리아는 석유 자원이 적은 편이어서 국제사회가 개입할 동인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1994년 르완다도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여서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학살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 폭정을 일삼는 아사드 정권이 이대로 명맥을 유지하면 다른 독재 정권에 희망을 주는 나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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