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그럼에도, 사악해지지 말자

    입력 : 2017.01.07 03:04

    국정 농단 취재하는 언론들, 진상 밝힌다며 보도 경쟁 치열
    덴마크에 은신한 정유라 찍으려 한 방송사가 현지 경찰에 신고
    '불개입 깼다' vs '옳은 결정' 역할 논란 분분하지만 '수갑 든 언론', 正道 아니다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방식은 니체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언론이 연출한 조작극'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말이 왜 나오는지 이유는 짐작할 수는 있다.

    대통령 뒤에 숨어 최순실 일당이 국민을 농락한 사실, 언론이 처음 단서와 증거를 내놨다. 검찰과 정치권은 후에 개입했다. 문제는 언론의 속성이다. '남과 다른 뉴스'와 '특종'을 쫓는 언론은 '더 더러운 뉴스'를 찾는 경쟁을 벌였다. 불쾌하더라도, 똑 떨어지는 사실이었다면 사람들이 언론에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8선녀들이 목욕탕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더라' '정유라는 패악질을 부렸다더라' 하는 '더라더라더라' 기사는 예전 같으면 언론사 정보 보고나 기자 사이 가십에 머물 이야기들이었다.

    대통령이 연루된 '거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불가피한 반칙이라 항변하거나, '정의를 구현하는데 그깟 기준이 대수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더 무겁게 받아들일 대목은 '불가피'보다는 '반칙'이다. '정의' 역시 매우 자의적 단어다. 괴물이 언론에 이렇게 물을 것 같다. "어쩐지 우리 좀 닮은 것 같은데…."

    '선(線)'을 넘더니 이젠 '원칙'도 흔들린다. 기자는 독자들에게 사건을 전달하는 사람(messenger)이며, 사건의 주체(主體)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언론의 불문율을 흔드는 작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덴마크 소도시에 은신한 정유라를 추적하던 종편 기자가 '취재를 눈치채고 다른 곳으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어' 현지 경찰에 신고했고, 정유라는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엄밀히 말해, '괘씸죄'를 빼고 정유라의 혐의는 '업무방해죄' 정도다. 현행 살인범도, 테러범도 아니었다. 기자가 신고한 뒤 체포되는 모습을 촬영해 방송한 것을 두고 '언론의 불개입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취재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 그러자 '명백한 범죄자인데 뭐가 문제냐' '언론의 취재윤리 조항을 교조적으로 받들 필요는 없다'는 옹호론이 나왔다.

    해당 방송사가 '보도 윤리를 깼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행위를 일반 원칙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가정은 어떤가. 지난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어느 주택에 숨어 있었다고 치자. 그를 인터뷰하려고 며칠을 기다리던 기자가 다른 곳으로 도주하려는 한씨를 경찰에 신고했다면? 한쪽은 기자를 '경찰 프락치'라고 비난하고, 다른 쪽에서는 '현행범을 고발하는 건 시민의 의무'라 옹호했을 것이다.

    그들이 지향한 '철학'을 빼고, 정유라와 한상균의 차이는 뭘까. 한마디로 정유라는 국민 밉상이고, 한상균에겐 지지자가 있다. 니체가 말한 '괴물의 심연'은 언론에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다수가 증오하는 자를 신고하면 선(善), 좋아하는 사람을 신고하면 악(惡)인가. '다수'의 기준은 뭔가."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이 이런 모토를 갖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막대한 개인정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닥다리 세대에 속하는 기자는 언론이 구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국민은 언론에 악마도, 괴물도, 천사도, 보안관도 되지 말고, 그저 '잘 닦은 거울'로 남을 것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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