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해 벽두 외교 大亂 조짐, 우린 운동권 논리로 맞서나

조선일보
입력 2017.01.07 03:08

중국, 일본에서 우리를 압박하는 일이 새해 벽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어제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데 대한 항의로 주한 일본 대사와 부산 총영사 일시 귀국 조치를 내렸다. 특명 전권대사를 귀국시키는 조치는 상대방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외교 행위다. 단교(斷交) 하나 아래의 강경 조치다. 일본은 외화 부족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통화 스와프 협정 재개 논의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20년 전 외환 위기 때 우리는 이런 비상사태 대비가 부족해 IMF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인한 중국의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4일부터 베이징을 방문했던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무례에 가까운 노골적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가속화하겠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중국 외교부 차관보는 사드 배치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민간 분야에서의 제재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 수출용 자동차 생산을 위해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려는 도요타 자동차를 지목해 공격했다. 그는 "미국에 공장을 세우든지 아니면 비싼 국경세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당장 멕시코에 자동차 공장을 지으려는 우리 기업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는 공약이 결코 빈말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외교부는 지금 상황을 '냉전 종식 후 가장 엄중한 외교 안보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그런데 이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이끌고 갈 리더십이 불확실하다는 문제까지 겹쳐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정권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가 밖에서 덮쳐오는 파도에 어떤 전략과 복안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이 더 심각할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부산 동구청이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자 "친일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친일파'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고방식 자체가 충격이다. 30~40년 전 운동권 학생과 같은 수준의 인식으로 이 복잡하고 다면적인 글로벌 시대를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일본과는 같은 자유 민주 가치를 공유하고 깊은 경제·민간 교류를 맺고 있는 동시에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복합적인 관계다. 이 문제를 '친일 대 반일'과 같은 단세포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냉정하고 주도면밀한 일본인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끌고 갈 수 없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집권하면 당장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하는데 실제 그럴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실행한다면 그 이후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명분과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당장 미국이 "한국이 또 골대를 옮긴다"고 비판하고 나올 것이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한·일정보보호협정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협정을 반대하는 논리도 운동권 생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간 것이 없다. '친일 매국 협정'이라는 것이다. 집권이 유력하다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전 대표가 한·미FTA를 반대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세계 각국이 서로 맺고 있는 정보협정을 '매국'이라고 비난하는 곳은 한국 민주당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협정은 한·미·일 간 북한 동향 정보 교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맺은 것일 뿐이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사드 문제로 압박하는 중국에 대해선 일본과 전혀 다른 자세로 대응하고 있다. 북핵 위협을 직접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나 미국이 아니라 중국 입장을 더 생각하고 있다. 중국에서 버는 돈도 중요하다. 그러나 돈과 생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드는 1차적으로 주한미군·국군 전력(戰力)과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주요 항만 등 전략 시설을 방어하는 것이다. 방어 범위가 넓기 때문에 민간 지역도 막을 수 있다. 만약 민주당 집권 후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북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주한미군은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이 사태에 누가 책임질 수 있나.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한 번도 설명을 한 적이 없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복합적이다. 최대 무역국이자 평화통일을 위해서 협력해야 할 대상이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의 폭력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세력이다. 중국의 안보 우려에도 유의하면서 양국 관계를 지킬 지혜를 찾되 언제나 기본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한·미동맹이 그 밑바탕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일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린다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추미애 대표도 "안보에 여야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내놓는 정책은 '사드 재검토' '한·일정보협정 재검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즉각 재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 1년에 수억 달러 현금이 북으로 들어간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우리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다. 북이 핵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누가 집권하든 올해는 외교 안보 대란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탄핵 사태는 오히려 작을 수 있다. 모든 정당과 대선 주자들은 외교 안보 문제에서만큼은 대중(大衆)을 겨냥한 선전 선동을 멈추고 책임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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