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3일 유엔 사무총장 공관을 떠나면서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함께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반 전 총장이 삭스 교수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3일(현지 시각) "오는 12일 오후 5시 30분쯤 아시아나 비행편으로 귀국하려 한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의 유엔 사무총장 관저를 떠나면서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는 진보 성향 경제학자로 유명한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반 전 총장이 10년간 머문 뉴욕을 떠나는 길에 삭스 교수와 함께 기자들 앞에 선 것을 놓고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이 경제,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 문제 해결을 내걸고 대선에 뛰어들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고 해석했다. 한 측근은 "반 전 총장은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하고(voice of the voiceless), 자기 방어할 힘이 없는 약자를 대신 지키겠다(defender of the defenceless)'는 구상을 갖고 귀국길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대선 출마 여부 등 정치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는 "국민 말씀을 경청한 뒤에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는 삭스 교수와 무슨 논의를 했느냐고 묻자 "한국의 젊은 층이나 노년층이 좌절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협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삭스 교수에게도 발언하도록 했다. 삭스 교수는 "한국은 훌륭한 미래를 갖고 있지만 분명히 개혁도 필요하며, (한국의 개혁 과제는) 반 전 총장께서 세계 발전을 위해 해온 것과 정확히 같은 선상에 있는 것들이란 점을 반 전 총장께 얘기했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근인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은 본지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간 삭스 교수 등 전문가들과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등 사회적 약자들의 양극화 문제 해결을 고민해왔다"며 "이 문제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기에 귀국하면 국민 앞에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유엔 관저 떠나는 반기문 부부 - 반기문(왼쪽) 전 유엔 사무총장이 3일(현지 시각)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미국 뉴욕의 유엔 사무총장 공관을 떠나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누구?]

반 전 총장은 지난 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삭스 교수를 특별 자문관에 위촉했다. 삭스 교수는 지난 2015년 반 전 총장이 새 유엔 발전 강령으로 제시한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만드는 데도 참여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삭스 교수는 반 전 총장의 자문 전문가 그룹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며 "한국 학자·전문가와도 네트워크가 넓어 귀국 후에도 반 전 총장 자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삭스 교수가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해온 진보 성향 경제학자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삭스 교수는 2011년 미국에서 있었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당시 거리에 나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위 1%가 부를 독점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됐다"고 강연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이 그런 삭스 교수에게 한국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묻고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반 전 총장이 대선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통한 국가 통합'을 주된 메시지로 내걸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반 전 사무총장은 4일 자신이 과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23만달러를 받았다고 최근 보도한 주간지를 "음해성 왜곡 기사를 보도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