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도 없던 청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 되다

    입력 : 2017.01.05 03:04

    [2017 세계 누비는 젊은 예술가] [3] 현대미술가 이완

    올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30년대생 남자 삶 그린 '미스터 K'
    밥상 위 음식의 생산과정 추적한 '메이드인' 시리즈로 이름 알려
    "인권·이념·세대 간 불균형에서 평형 맞추는 저울 역할 하고 싶어"

    2004년 미대를 갓 졸업한 청년은 자신의 처지가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방금 출고된 제품(製品) 같았다. 똑같은 교육 시스템을 거쳐 사회에 뚝 떨어진 존재. 누군가 사줘야 비로소 상품(商品)으로 소비되는 제품처럼 누군가 알아줘야 작가로서 빛을 보게 될 텐데 앞길이 아득했다. 작업실 구할 돈도 없었다. 교수님께 부탁해 수업이 없는 방학 동안 전공 강의실 앞 야외에서 작업했다. 어린이 미술학원 강사, 사진가 보조로 생업을 이으면서도 '본업' 예술은 포기하지 않았다.

    작업 공간도 없어 전전해야 했던 이 청년 작가가 한국 미술을 대표해 세계 최대 미술 축제에 선다. 올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현대미술가 이완(38)이다. 그는 작가 코디 최와 함께 한국 미술을 대변한다. 쟁쟁한 작가를 제치고 이완이 선택된 건 거대 담론 같은 현대미술의 구태의연한 더께를 떨치고 '현장'으로 돌진했다는 점이었다.

    지난 2일 그를 만나러 서울 문래동으로 향했다. 미세 먼지, 쇳가루 뒤범벅인 문래동 공장지대 대로(大路)에 이완의 공간이 있었다. 공구 소리 윙윙 나는 산업 현장 한가운데에 있는 작업실은 바삐 가동 중인 공장 같았다. 한쪽에선 조각이 제작 중이고, 천장엔 평형저울 같은 설치물이 매달려 있다. 곳곳에 벼룩시장에서 그러모은 잡동사니가 쌓여 있다. 먼지 뽀얀 잡동사니에서 건진 이야기가 이번 비엔날레의 굵은 뼈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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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문래동에 있는 이완의 작업실엔 잡동사니가 소복하다. 이완은 이 물건들에 숨은 역사와 시대 얘기를 끌어낸다. 이 중 황학동에서 건진 흑백사진 속 한 남성의 이야기가 올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나간다. /박상훈 기자

    "황학동에서 한 할머니가 흑백사진 꾸러미를 파시는 거예요. 통에 담긴 사진 수백장을 가져와서 퍼즐 조각 맞추듯 살펴봤어요." 사진 뒤에 쓰인 단서를 추적했더니 기자이자 시인이었던 1936년생 한 남성의 인생이 그려졌다. "개인보다 가족, 가족보다 국가가 앞섰던 시절, 개인을 희생하고 근대화를 일궈낸 한 사람의 역사가 통째로 길바닥에 나앉아 고물로 팔리는 현실이 아이러니했어요."

    '화엄경'의 글귀를 떠올렸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한 알의 티끌 속에 우주가 들어 있고 낱낱의 티끌이 모두 그러하다. 한국의 근대화 중심에 있던 이름 모를 한 개인의 일생을 사진과 영상, 설치물로 보여주기로 했다. 작품명은 한국의 무명씨 '미스터 K'다. 그는 "이제까지 서구의 눈으로 우리의 예술을 봤는데 한국에서 출발해 아시아, 세계를 들여다보는 눈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근대화'와 '균형'은 그가 뚝심 있게 붙잡고 있는 주제다.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타면서 이완이라는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키게 된 작품 '메이드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어느 날 아침 밥상을 봤더니 밥상 위에 10여개국에서 만든 식품이 있었어요. 단돈 1000~2000원만 주면 전 세계 생산품이 식탁 하나로 모인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면서도 두려웠습니다. 가격 경쟁의 효율성 때문에 전 세계가 분업화됐는데, 공장이 대부분 아시아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지요."

    최종 소비자가 아닌 최종 생산자가 돼 직접 한 끼 아침을 차려 보는 과정을 담겠다는 생각으로 아시아 10여개국으로 날아갔다. 대만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사탕수수를 베고 돌로 으깨고 끓여 설탕 한 스푼을 만들었다. 미얀마에선 3g의 금을 채취해 알약만 한 금 조각을 만들고, 태국에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옷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식민지 착취 구조와 산업 수탈의 역사를 보여줬다. 이번엔 말레이시아 팜오일, 라오스 식탁보, 인도네시아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영상과 직접 만든 '생산물'을 추가해 출품한다.

    "과거 화가들은 황금비율을 찾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어요. '균형'을 찾아내는 예술가의 임무가 지금도 필요하다고 봐요. 인권, 이념, 세대 간 불균형에서 각종 사회문제가 비롯돼요. 그걸 포착하는 게 제 역할이라 봅니다." 서른여덟의 이 젊은 작가는 자신이 '창문'이 돼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온갖 불평등의 평형을 맞추는 '저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첫 시험대가 올 베네치아다.

    [비엔날레서 보여줄 이완 작품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설탕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담은 ‘메이드인’ 시리즈 대만 편.
    사탕수수 농장에서 설탕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담은 ‘메이드인’ 시리즈 대만 편. /이완

    각국 365명 인터뷰 영상

    올 5월 13일 개막해 11월 26일까지 열리는 '제57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는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예술 만세)'.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가 예술감독을 맡은 한국관 주제는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평형추)'다. 이완, 코디 최가 한국관 작가로 선정돼 인권, 빈부, 세대 간 불균형을 다룬다.

    이완은 '메이드인' '미스터 K', 전 세계 365명을 인터뷰한 영상 '고유시' 등 6점을 출품한다. 이대형 예술감독은 "이완(동국대 조소과 졸업)은 서울대, 홍대 미대 출신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닌 토종 한국 작가"라면서 "직접 현장에 들어가 여과 없이 아시아의 불균형 현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구 작가와는 전혀 다른 빛깔을 지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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