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임상시험 '알바'

    입력 : 2017.01.05 03:16

    40대 남자 환자가 배가 너무 아프다며 병원 진찰대에 누웠다. 의대생이 다가와 언제부터 아팠느냐며 진료를 한다. 손가락으로 환자의 오른쪽 배를 누르자 아프다며 펄쩍 뛴다. 의대생은 담낭염 같다고 했다. 그러자 환자가 미소를 짓는다. 정답이다. 그는 진료 능력 테스트용 가짜 환자다. '표준화 환자'로 불린다. 심근경색·우울증·호스피스 등 환자를 연기하는 멀쩡한 일반인이다. 시간당 1만~2만원 번다. 부업용으로 주부·퇴직자·배우 지망생 등에게 인기를 얻자 환자 연기 학원도 생겼다.

    ▶서울 신림동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에는 40여개 병상이 빼곡히 들어찬 대형 병실이 있다. 입원한 사람들은 7번, 19번 등 번호로 불린다. 혈색 좋은 '환자'는 온종일 먹고 자고 빈둥거리다가 약을 먹는다. 일정 시간마다 피만 뽑으면 된다. 이곳은 오리지널 약을 복제한 약이 오리지널처럼 혈중 농도를 내는지 테스트하는 임상연구센터다. 참가자는 1박2일에 30만원 받는다.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이곳 '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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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해 전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에 대한 국내 임상시험이 이뤄진다는 보도가 나가자 해당 병원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소발디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의 신약이다. 3개월 투여하면 바이러스 퇴치 효과가 99%에 달한다. 문제는 1억원 하는 약값이다. 임상시험 대상에 들어가면 약값이 무료니 환자들이 서로 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소발디 로또'라는 말이 나왔다. 말기 암에 효과 내는 고가의 면역 치료제 임상시험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임상시험 '알바'에 몸을 맡기는 60대 어르신이 많다고 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못하는 노년 세대가 몸을 저당잡혀서라도 생계비를 벌겠다고 경쟁까지 한다니 가슴이 짠하다. 거리의 무직자들이 혈액을 팔려고 줄을 서던 시절이 있었다.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를 그린 중국 유명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도 연상된다. '신장 팝니다'며 휴대폰 번호를 남긴 대학병원 화장실 스티커 광고를 보고 있으면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심정이 든다.

    ▶임상시험은 양날의 칼이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물에 노출되는 위험이 따른다. 우리나라는 한 해 700건 정도의 임상시험이 식약처 승인 아래 이뤄진다. 최근 3년간 임상시험 과정에서 약물 이상 반응이 476명에게 발생했다. 사망자도 49명 나왔다. 신약 효과를 보고 싶은 경우든 생계를 위해 몸을 제공하는 경우든 부작용에 대한 안전 방책과 투명한 정보 공개도 이뤄지는 양면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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