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경제부장

고3 아들 덕에 대학 입시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우리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입시 제도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다. 경제 기자 시각으로 보면, 현행 대입 전형 방식은 돈과 정보력을 지닌 계층, 최상위 1% 학생들이 기회를 선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학 진학을 일종의 서비스 상품 구매 행위라고 본다면, 판매자(대학)와 구매자(수험생) 간에 정보 불균형이 극심하다. 대학이 주는 정보는 전년도 학과별 경쟁률, 합격생 수능 평균 점수, 추가 합격자 숫자 정도다. 사설 입시정보 기관에서 대학별 정시 모집 배치표(예상 커트라인)를 발표하지만, 수집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신뢰도가 떨어진다.

수험생은 본인 성적이 전국 수험생 중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 전국 석차도 모르는 채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시 철이 되면 1시간 상담에 40만~50만원씩 받는 입시 컨설팅 업체들이 특수를 누린다. 돈과 정보력에서 뒤지는 서민층 자녀들은 '좋은 점수'를 얻고도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

'깜깜이 선택'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수험생들은 결국 재수의 길을 택한다. 그런데 종합반 학원비와 사교육비까지 감안하면 재수 비용이 연 3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서민층으로선 감당이 안 되는 비용이다. 당연히 재수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

2016년 12월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대학 정시입시 설명회를 찾은 한 학부모가 수능성적표 계산을 하고 있다.

기존 대입 제도는 최상위권 1%가 선택의 기회를 선점한다는 점에서, 몇몇 독과점 대기업이 가치 사슬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경제 모델과 닮았다. 예컨대, 이과의 경우 의대 진학을 꿈꾸는 상위 3000명만 온전한 선택의 기회를 누린다. 등록금이 비싼 의대 진학생들은 대체로 부모 소득이 높다. 이들이 의대와 SKY(서울·고·연대) 상위권 학과 간 최종 선택을 마치면, 그 아래 범주에 속하는 대학들에서 합격생 연쇄 이탈이 시작되고, 수험생과 학부모 진을 빼는 '추가 합격 시즌'이 시작된다. 서울대에서 시작된 합격생 이탈 도미노로 인해 중하위권 대학의 경우 최초 합격자보다 추가 합격자가 더 많은 황당한 상황까지 생긴다. 이런 구조에선 최상위권을 제외한 99% 수험생들에게 '소신 지원'은 그림의 떡이다.

고속 성장기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계층 이동 사다리 기능을 수행해 왔다. '개천 용'들은 남다른 자질과 성실성으로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육은 부모의 돈과 정보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작년 송년 모임에서 만난 '개천 용' 출신 대학 친구들은 삶을 옥죄는 대한민국 교육을 저주했다. 대기업 부장인 친구는 "억대 연봉으로도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푸념하고, 변호사 친구들은 "헌법을 바꿔서라도 사교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한 인구학자는 앞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 서울 지역 대학에 들어가기가 훨씬 쉬워질 거라면서 자녀에게 사교육을 안 시킨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학연·지연에 기초한 기득권 구도에서 SKY의 효용은 여전할 것이고, SKY를 향한 입시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대학 서열을 없애기 어렵다면 입시 제도를 좀 더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돈과 정보력에 의한 경쟁력 격차라도 없애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