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이 문학·출판계에 드리운 광채는 지금 생각해도 눈부시다. '솔직히 근래 나온 소설 가운데 이만큼 독자의 교양 욕구를 충족하면서 강렬한 흡인력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작품을 보지 못했다.' 이문열의 신문 서평까지 가세하면서 책은 100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이인화가 움베르토 에코, 존 그리샴 소설의 추리 기법을 차용했다고 하자 이 책들이 덩달아 붐을 이뤘다.

▶그는 박사 학위도 받기 전 스물아홉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에 영입됐다. '이인화'는 필명, 대학교수로 쓰는 본명은 류철균이다. 필명은 염상섭 소설 '만세전(萬歲前)' 주인공 이름에서 따 왔다고 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지식인의 자의식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소설가와 개인 류철균을 구별하겠다는 뜻으로 '이인화(二人化)'라는 필명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영원한 제국'은 조선 후기 집권 노론(老論) 세력의 정조(正祖) 독살설을 소재로 했다. 그즈음 만난 이인화는 "집안에 은밀히 내려오는 얘기를 어렸을 적 어른들한테 전해 듣고 소설로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조 사후(死後) 불운을 겪은 영남 남인(南人) 양반가 후예다.

▶'영원한 제국' 성공 후 이인화는 발레·오페라 대본 같은 것을 쓰다가 '겜돌이'가 됐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게임과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게 된 게 계기였다. PC방에서 42시간 연속 '리니지2' 게임을 하기도 했고, 1초에 16번 클릭하는 로지텍 마우스를 쓰다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적도 있다. "아이들은 현실이 불합리하게 디자인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임은 자기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세계다." 이인화는 자기가 '게임 전도사'로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 이인화가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학점 취득 등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특검이 너무 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국내에 있지도 않은 정유라가 시험을 본 것처럼 해준 이인화에게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이인화는 근래 쓴 글에서 '인간이라는 미물들은 타인을 향한 욕망, 집착 때문에 늘 사고가 생기고 사건이 많은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일당이 저지른 불합리한 세계와 거기에 의탁해 이루려 한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지켜야 할 것은 강의실과 연구실, 집필실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니 재단이니 하는 곳은 어떻게 해서 곁눈질하게 됐을까. 그가 '지식인의 자의식'과 맞바꾸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영원한 제국'의 몰락은 그래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