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2017년의 화두는 檢證이다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7.01.03 03:17

    대통령 탄핵 사태의 씨앗… 부실 검증 때 이미 뿌려져
    잘못 반복하지 않으려면 후보의 사상과 이념, 교우
    심지어 病歷까지도 돌멩이 뒤집듯 다 까봐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결국 문제는 검증(檢證)의 실패였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것은 5년 전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딸, 아버지·어머니를 모두 총(銃)으로 잃은 불우한 사람, 결혼하지 않은 독신, 야당을 구해낸 정치인―이런 이미지에 갇혀 많은 국민은 박근혜의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

    그때도 최태민·최순실 부녀와의 개인적이고 숙명적이며 거의 종교적(?)인 관계가 거론되기도 했고 그 관계를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들도 있었으나 이것들은 그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의 경멸에 가까운 반박과 완강한 부인(否認)으로 흐지부지됐다. 문고리 3인방 얘기도 끊임없이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 국정의 공기능을 저해하고, 대통령 주변을 권력의 사적(私的) 놀이터로 몰아갈 줄 차마 몰랐다. 그리고 집권 4년 내내 박 대통령은 그 안에서 인사(人事) 불통으로 지새웠다. 그 대가를 지금 우리는 헌정 사상 유례가 드문 현역 대통령 '축출'로 치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사적 공간'을 거론했다. 대통령에게 사적 공간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대통령의 멍에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반복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박 대통령이 탄핵되든 아니든 금년에 새 대통령과 정부를 뽑게 돼 있다. 대통령 선거전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각 대선 주자의 정치 성향과 노선, 발언, 정책 방향, 지지 세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사적 공간까지 철저히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에 들어섰다. 박근혜 때와 달리 우리는 어떤 사소한 돌멩이 한 개라도 반드시 뒤집어 봐야 한다.

    각 주자가 떠들어대는 정권 교체니, 새로운 도약이니, 희망의 나라니, 공정 국가니 운운 등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 안에 그 어떤 '최순실'이 들어 있는지, 그들 주변에 어떤 정치 장사꾼들이 포진해 있는지, 그들의 과거 어린 시절부터 청·장년 후반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따져봐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속된 말로 '껍데기' 벗기듯 해야 한다. 대선 기간이 짧은 만큼 검증의 효율성이 더욱 절실하다.

    과거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의 성향도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각 후보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이며 어떤 생각, 어떤 경력을 갖고 있으며 어떤 교우 관계, 어떤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감안, 무엇보다 사상적·이념적 영역을 살펴야 한다. 지역 또는 후보 단일화를 통한 공작적 표 몰이 등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의 현 직책이나 직위에 오도되지 않고 과거의 위법 사항, 심지어 작은 교통 규칙 위반이나 병력(病歷), 사소한 시빗거리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조작된 제보 등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모르고 넘어가거나 넘겨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온갖 미사여구가 판치고 있다. 문재인씨의 재조산하(再造山河), 반기문씨의 정치 대통합, 안철수 의원의 마부위침(磨斧爲針) 등 마치 한문(漢文) 자랑하듯 야단이다. '나라를 다시 만든다'니 나라가 어디 없어지기라도 한 것인가. 나라는 잘 있다. 다만 문제는 정치이고 이 기회에 나라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가려는 야심이다. '정치 대통합'이라니 정치 대통합은 우리 현실에서 남북통일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다. 통합이 능사가 아니라 결속이 문제다. 지금 우리는 이런 말장난으로 위중한 사태를 침소봉대하거나 위중한 정도를 확대재생산하는 따위를 즐길 형편이 아니다.

    경제는 갈수록 어렵다. 이제 국민의 생활수준은 우리가 이제까지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온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위축되고 있다. 청년 일자리, 고령화, 출산 절벽 어디 한 곳 의지할 데 없이 팍팍하게 굴러가고 있다. 주변 정세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러시아의 푸틴,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은 우리 머리 위를 엄습하는 괴물의 그림자와도 같다. 어쩌면 동북아에서 제2의 애치슨라인이 그어지는 세력 판도의 재편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아가 되거나 중국의 손에 맡겨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나라 안팎 사정이 이럴진대 차기 대선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와 두뇌와 용기를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것이 나라의 사활과 직결되는 문제다. 판을 흔들고 뒤집겠다는 위험한 기회주의를 경계할 때다.

    지금 박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가 내외 상황에 대처해 새로운 리더십으로 무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박근혜의 역할은 여기서 소명을 다한 것으로 보면 된다. 우리가 새로운 리더십으로 갈아타는 것은 어쩌면 소중한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시대에 맞춰 다음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또다시 검증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검증 능력과 검증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17년은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검증의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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