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사회적 격변기마다 개헌(改憲)으로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1960년 4·19 혁명은 내각제 개헌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87년 체제'를 출범시켰다. 전문가들은 87년 체제 극복의 키워드로 '권력 독점에서 분권으로, 정치적 대립에서 공존으로'를 제시하고 있다.

◇독점과 대립

87년 체제의 특징은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보수·진보 양당 제도가 고착된 국회의 상시적 충돌이었다. 상대방보다 불과 몇 퍼센트 포인트 앞서는 박빙 승부로 당선된 대통령은 인사, 예산, 정책 등 권력의 100%를 가져갔다. '승자 독식'이었다.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등은 대통령 1인의 권력을 강화·유지하는 도구로 종종 전락했다.

여당은 '제왕적 대통령'의 힘에 의지해 야당을 무시했다. 반면, 야당으로선 국정 책임을 나눠서 지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실패해야 정권을 찾아온다'는 인식 아래 정권 공격에만 몰두했다. 국회에서 가진 힘을 동원해 대통령이 하려는 거의 모든 것을 막았다. 거기에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까지 만들어져 5분의 3 이상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여당은 야당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기 어렵게 됐다. 저쪽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식의 정치가 30년 동안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진보·보수 양당은 선거 때마다 이념적 갈등과 지역주의를 극대화시키며 유권자들 편 가르기로 선택을 강요했다. 그래서 보수·진보의 양대 기득권 세력(김상조 한성대 교수)은 '87년 체제' 극복에 소극적이었다.

[[키워드 정보] 87년 체제란?]

이와 함께 독재를 막기 위해 도입했던 '5년 단임제'로 인해 전임 정권의 정책은 축적·계승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임기는 5년이었지만 집권 3년 차 이후에는 레임덕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은 "결국 87년 체제는 대통령 권한은 제왕적이었지만 국회와의 충돌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체제가 됐다"고 말했다.

◇분권과 공존

그랬던 정치권이 2017년 화두로 개헌을 던지고 있다. 국회가 1월부터 개헌특위를 만든 것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는 87년 체제의 핵심인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의회의 다수당이 행정부 구성권을 가지는 '의원내각제' ▲대통령은 외치(外治), 총리는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현직 대통령이 4년 뒤 재신임을 받게 하고 대통령 권한은 줄이는 '4년 중임제' 등이 거론된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헌법학)는 "어떤 제도가 되든 대통령 권력은 줄이고 국회의 부당한 특권도 함께 줄이는 쪽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87년 체제' 극복 문제는 권력구조 논의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새 헌법에는 부패와 양극화를 해결하며 함께 사는 사회로 나가는 방향을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철 전 의원은 "검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 기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고, 경북대 신평 교수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새로운 헌법에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외에 '87년 체제'의 특징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재벌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도 꼽히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시기에는 논란이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단기간의 개헌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하고 구체적 일정을 밝히고 대선 이후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정부 초기에 개헌을 하고 2020년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