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춘문예] 문학평론

조선일보
입력 2017.01.02 03:02

전영규
전영규

[문학평론 당선 소감/문학평론 부문 심사평]

[문학평론 당선 소감]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스럽다고… 그렇게 반짝이는 글 쓰고 싶습니다

전영규


고요하게 반짝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평론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의 성감대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일. 그들을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부여하는 일.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느덧 그들을 향한 사랑을 책임져야 할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고통이나 추함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한 위장을 지니고 싶습니다.

박민규와 황정은을 읽으면서 묘하게 겹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구절을 빌리자면,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비관주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이곳에서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생에게 아기가 생겼습니다. 그제야 적어도 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갈 세대들의 삶에 대해 골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고,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용기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괴물이 아닌 아름다운 인간으로 멸종할 수 있도록,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를 바랐습니다. 이 시대의 뷰티풀 엑스(beautiful X)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 다가올 것들을 향해 두려움 없이 맞이할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엑스맨이 되고 싶습니다. 오래된 연인처럼 그들의 아름다움을 한결같이 지켜내는 일. 이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늘 고군분투했던 것 같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제 곁에는 보들레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근사한 아빠가 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탱고를 추는 엄마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풍부한 감성이 제 뼈를 키웠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똑똑하고 명랑한 동생들도 있습니다. 소설 속 '나나'의 아기처럼 앞으로 태어날 조카의 삶이 꽃길로 가득했으면 합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정작 나는 너무 무심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제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글을 쓰는 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저를 지켜주시는 학교라는 든든한 울타리도 있었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주신 이승하 선생님(제 창작 욕구는 선생님의 무자비한 과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항상 넉넉한 품으로 감싸주시는 전영태 선생님. "너는 꼭 평론을 써야 되겠구나" 말씀하셨던 박철화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이상이란 근사한 사람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제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던 송승환 선생님과 류신 선생님. 무한한 애정을 주시는 당신들이 계셨기에 저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사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증명할 좋은 기회를 주신 강유정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자유란 그저 혼자가 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여전히 자유롭고 싶고, 다시 한 번 무참하게 고독해질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것들을 향해 초연해지고 싶습니다. 고요하게 반짝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한결같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오래된 연인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문학이라는 가장 깊은 심연에 다다를 때까지 지치지 않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86년 충북 청주 출생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강유정(문학평론가)
강유정(문학평론가)

[문학평론 부문 심사평]

기성이 된 문학에 건네는 낯선 제안… 부디 당돌한 신인 비평가가 되시길


투고작은 모두 열다섯 편이었다. 읽는 데 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소요될 만큼 열정과 내공이 쌓인 응모작들이었다. 여러번 다시 읽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세 편을 최종 후보로 삼았다. 박성태의 ‘본래적 자기의 행방―편혜영 장편소설의 존재론적 성찰들’, 조대한의 ‘슬픔과 마주하며 살아가기―시적 애도의 방식들’, 마지막으로 전영규의 ‘이 시대 뷰티풀 엑스의 탄생기―박민규와 황정은의 소설’이었다.

박성태의 글은 꼼꼼하고 안정된 문장 속에 독자를 돌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점잖게 핵심을 찌르는 문장들은 응모자가 작품과 세상에 잘 단련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개별 작품들의 해석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비평적 감식안이 부재했다. 섬세한 해석은 비평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다.

조대한의 글은 박준, 이은규와 같은 시인들의 작품을 애도로 읽어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애도는 매우 중요한 윤리적 자세이자 태도가 되었다. ‘애도’가 최근 문화계의 중요한 핵심어라는 사실은 조대한 글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논의를 경신한다거나 전복하는 비평적 참신함을 찾기 어려웠기에 결국 단점이 더 부각되고 말았다.

전영규의 글은 박민규와 황정은을 ‘뷰티풀 엑스’라는 신인류로 호명하고 이 낯선 호명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학술적인 꼼꼼함보다는 두 작가와 작품들 그리고 동시대 이데올로기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발상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글이다. 때로 과격한 일반화나 의욕적 진술이 머뭇거리게 했지만 한편 이러한 과격함이나 의욕이야말로 신인에게 허락된 특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무릇 기성이 된 문학에 새로운 전언과 낯선 제안을 건네는 것, 그것이 바로 신인의 의무 아닐까?

문학이 작아졌다고 하지만 사실 훨씬 더 첨예해졌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학은 그리고 비평은 훨씬 더 적극적인 언어와 자세로 현실을 읽고, 또 이념에 개입하고 있다. 신인 비평가의 탄생에 축하를 보낸다. 무릇 한국 문학에 당돌한 인장 하나를 남기기를 기원한다.

강유정(문학평론가)

※평론 당선작은 chosun.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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