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춘문예] 쌍둥이-양보의 대가

조선일보
입력 2017.01.02 03:02

[시조 당선작/시조 당선소감/시조 부문 심사평]

김상규

언니는 모르겠지, 그해의 봄 소풍을

반숙된 달걀에선 병아리가 나왔고

사라진 보물종이가 영원한 미궁인 걸



두 발은 위태로워 네 발이 필요했어

날개 없는 말개미가 꼭대기에 오르듯이

나 대신 이어 달렸던 언니만의 거친 호흡



서로의 옷을 입고 고백했던 그런 하루,

강에 버린 구두 대신 목발을 짚었을 때

우리는 만쥬를 가르며 용서하고 있었어

/이철원 기자


김상규
김상규
[시조 당선소감]

제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다섯 살 나와 친구를 맺은 아버지. 존경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지만, 그래도 이젠 증오하지 않습니다. 몸 생각해서 술 적당히 드세요.

나만 아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고종사촌. 이왕 소년원 들어간 거 정신 차려서 나와라. 형이 신문 들고 면회 가마.

구원받지 못할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복역 중인 두 삼촌과 병동 속 고모에겐 감사를 전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하찮은 위로가 도움이 안 되는 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나의 ‘신순생’ 할머니. 핏덩이 저를 거둬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부디 하루라도 아픔 없이 사세요.

여기에 적진 않았지만 저를 가르쳐준 모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선생님들이야말로 저의 은인이십니다.

정작 제 이야기는 쓰지 못했네요. 뭐, 크게 걱정하진 않습니다. 지금부터 하면 되니까요.

―1984년 제주 출생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정수자(시조시인)
정수자(시조시인)
[시조 부문 심사평]

고투의 과정으로 끌어낸… ‘양보’없는 새로움

시조의 ‘혁신’(이병기)은 형식 안의 혁명 같은 것. ‘신춘’(新春)에서 낡음과 낯익음부터 가려내야 하는 까닭이다. 잘 익은 작품도 지난 응모작 흔적(제목 바꾸기, 조금 고치기)이 보이면 자기 표절로 내려놓았다. 습작의 시간과 고투의 과정이 담긴 작품들을 골라 들고 고심을 거듭했다.

당선작으로 김상규씨의 ‘쌍둥이―양보의 대가’를 뽑는다. 끝까지 옆을 차지했던 응모자는 조성국·조우리·김태경·조경섭씨 등이었다. 조성국씨는 새로운 영역의 상상력에 비해 추상성과 기시감이, 조우리씨는 압축의 낙차보다 서사적 구조화가 더 보여서 밀렸다. 김태경씨는 사회적 상상력이 두드러지나 시조에 편재한 투어(套語)적 종결이, 조경섭씨는 안정감을 못 넘어서는 낯익음이 걸렸다. 남영순·이예연·김화정씨는 아쉬웠지만 균질성을 해치는 문제들(기존 응모작, 기성시인)이 있었음을 밝힌다.

김상규씨는 생의 이면 읽기와 표현의 영역 개척이 활달하다. 편견과 불편의 쌍일 듯한 ‘쌍둥이’와 ‘양보’의 관계를 내밀한 탐사 끝에 보편적이고 시사적인 알레고리로 확장한다. ‘봄 소풍’에서의 ‘미궁’이나 이어달리기의 ‘거친 호흡’ 등은 ‘언니’와 늘 함께하며 쌓였을 그 무엇들의 환기다. ‘서로의 옷을 입고 고백’한 후 맞은 분리와 성숙 같은 ‘용서’도 ‘양보의 대가’(代價 혹은 大家)로 심화되는데 여기에는 흔들림 없는 어조도 일조하고 있다. 응모작에 돋보인 것은 과잉 없이 간명해서 더 깊어지는 표현들이다. ‘최초의 울음소린 존재의 아명입니다’ 같은 다층적 포착과 해석들이 단형을 넓히리라 본다. 당선을 축하하며 ‘양보’ 없는 새로움을 기대한다.

정수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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