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곳은 '알바 지옥' … 회장님 오는 날은 수당도 없이 밤샘 청소

입력 2016.12.31 03:03 | 수정 2017.01.02 14:53

경영 이념은 '나눔'과 '바름'인데… 임금 등 84억원 떼먹은 이랜드파크

일러스트
/김성규 기자
한주리(가명·22)씨는 3년 전 경기 한 도시 패밀리 레스토랑 '애슐리'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서빙과 설거지 등을 하고 최저시급인 4860원에 하루 4시간씩 주 5일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1년 뒤 매장 측은 한씨를 고참 알바 격인 '리더 메이트'로 승진시켰다. 시급은 그해 최저시급보다 90원 많은 5300원이 됐다. 이때부터 일감이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리더 메이트는 신참 아르바이트생과 달리 2주에 한 번씩 정례 미팅에 참석했다. 미팅은 퇴근했음을 확인하는 지문을 찍은 뒤 열렸다. 새벽 2~3시까지 복장 점검이나 친절 교육을 받았고 매장 홍보물도 만들었다. 밤샘 근무도 종종 있었다. 한씨는 "회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테이블 사이를 줄자로 재서 맞추고 매장 대청소를 하고 나니 다음 날 아침 7시가 됐다. 집에서 씻고 7시 50분에 다시 매장에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퇴근 확인 지문을 찍고 나서 이뤄진 일이어서 임금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전산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나는 애슐리의 노예였다"

한씨는 하루 4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매장 책임자인 매니저는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을 시켰다. 새로운 메뉴가 나오는 날은 한 시간 일찍 나와 준비를 했고, 손님에게서 불만이 접수된 날은 퇴근 후 혼나느라 한 시간씩 늦게 집에 가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씨는 입 꾹 다물고 참았다. 리더 메이트 윗자리인 '트레이너'로 승진하기 위해서였다. "트레이너부터는 정규직입니다. 제 꿈이 매장 매니저가 되는 것이어서 부당한 노동을 시켜도 어지간하면 버티려고 했지요."

매장 측은 한씨에게 2년 뒤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 7월 한씨에게 '퇴사 후 재입사'를 권유했다. 근속 기간을 짧게 토막 내 한씨 퇴직금을 줄여보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한씨는 회사의 꼼수를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그로부터 9개월 지나고도 정규직 전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한씨는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이 일하는 매장은 물론 이웃 매장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봐도 정규직으로 전환한 아르바이트생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사표를 낸 한씨는 "3년간 나는 애슐리의 노예였다"고 말했다.

4만여명 임금 수당 떼어먹어

애슐리·자연별곡 등 21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파크'가 근로자 4만4360여명의 임금과 수당 83억7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랜드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관 700명을 투입해 전국 360개 매장을 조사한 결과 회사 측이 각종 명목으로 임금뿐 아니라 연장수당·야간수당·휴업수당·연차수당 등 직원 인건비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애슐리의 불법 노동을 지적했던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최근 3년간 이랜드파크 영업 이익은 100억원가량으로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착취한 것이었다"고 했다.

본지가 만난 이랜드파크 계열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터져도 너무 늦게 터졌다"고 입을 모았다.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이란 의미였다. 지난해 3월까지 한식 뷔페 '자연별곡'에서 일했던 양재영(가명·22)씨는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 오후 4시부터 6시간 일하기로 했던 양씨는 "4시 1분에 도착해도 4시 15분부터 일한 걸로 치고, 퇴근 때도 10시 14분까지는 10시 퇴근한 것과 똑같이 취급했다"고 했다. 속칭 '꺾기' 수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랜드파크 매장들은 식당 손님이 적은 날에는 하루 4~7시간 근무하기로 한 알바생들을 일찍 퇴근시키고 휴업수당을 주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약정된 근로시간을 다 채우지 못할 경우 해당 시간에 대해선 임금의 70%를 줘야 한다. 이랜드파크는 이런 방법으로 종업원 3만8690명의 휴업수당 31억원어치를 떼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1개월 개근하면 유급휴가 1일을 주거나 연차수당을 줘야 하지만 회사 측은 1만7388명의 연차수당 20억원도 주지 않았다. 자연별곡에서 일하는 김설아(가명·21)씨는 "여러 지점을 옮겨다녔는데 '꺾기' '근무 10분 전 도착' '퇴근 지문 인식 후 군기 교육' 등은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었다"며 "매니저가 '오늘은 일이 없으니 한 시간 일찍 퇴근하라'며 집에 일찍 돌려보내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일부 종업원은 "평소에 근로감독 공무원이 오면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도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도 했다.

회사 처우에 대한 불만은 아르바이트생뿐만 아니라 정규직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임금 체불 피해자 중에는 아르바이트생뿐 아니라 정규직 직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졸 신입 정규직인 A씨는 "공식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인데 실제로는 직원 대부분이 7시까지 출근한다"며 "직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고 했다. 외식 매장에서 근무했던 정규직 B씨는 "야근 시간을 입력해 점장이 본사로 보내면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오히려 아르바이트생보다 더 많은 무임금 추가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랜드파크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이 체불 임금을 받는 과정에서 법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소송을 대행하겠다고 밝혔고 지금까지 피해자 10여명이 소송 도움을 요청했다.

불매 운동 퍼지며 회사 위기로

이 사건이 불거지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랜드 불매 운동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랜드그룹 매장 간판을 배경으로 '이랜드 제품을 불매하겠다'고 쓴 종이를 들고 찍은 '인증 샷'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대학생 박모(20)씨는 지난 21일 애슐리 매장 앞에서 '나는 알바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이랜드 애슐리를 불매합니다'고 쓴 종이를 든 채 셀카를 찍어 SNS에 올렸다. 사건 진원지인 '이랜드파크'뿐 아니라 '이랜드리테일' 계열 브랜드에도 불똥이 튀어 슈펜·스파오 등 패션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 기류도 심상치 않다.

이번 사건은 최근의 녹록지 않은 이랜드그룹 외부 경영 환경과 맞물려 회사에 큰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룹 창업자 박성수(64) 회장은 1980년 500만원을 빌려 서울 신촌에 차린 2평짜리 보세 의류점 '잉글런드'에서 시작해 매출 10조원 그룹을 일궈낸 자수성가 스토리로 유명하다. 이랜드그룹은 현재 국내외 1만600여개의 매장과 50여개의 도심형 아웃렛 매장, 20개 호텔, 130개 패션 브랜드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급성장은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이룬 것이었다. 이랜드는 지난 10여년간 뉴코아·해태유통·동아백화점·우방랜드·엘칸토 등 유통과 레저 분야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국내외 호텔도 잇따라 인수해 사이판PIC와 중국 구이린호텔, 전주 코아호텔, 대구 프린스호텔 등도 소유주가 이랜드로 바뀌었다. 이랜드는 한때 LA다저스 구단 인수를 추진하는 등 M&A 시장의 '공룡'으로 변신했다. 이랜드 측은 제주도에 미국 디즈니랜드를 연상케 하는 테마파크를 추진하는 등 제주도를 이랜드 관광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랜드는 사세 확장을 위해 많은 빚을 냈고 그로 인한 유동성 문제를 지적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올라 있는 이랜드건설과 이랜드파크 등의 공시 내용에는 계열사 간 자금 대여와 차입이 유난히 많다. 지난 6월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5조원이 넘는 차입금 등을 거론하며 이랜드 계열사의 신용 등급을 낮췄다.

회사 경영 이념은 '나눔'과 '바름'

이랜드는 과거 사업 과정에서도 잡음이 적지 않았다. 비정규직 해고, 중소기업 디자인 도용, 인테리어 도용 등 사건이 불거져 그때마다 사과문을 내야 했다. 그룹의 주요 사업 분야가 일반 제조업이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레저와 외식, 유통 중심이어서 불매 운동은 경영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는 경영 이념으로 '나눔'과 '바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사건으로 그 이미지가 크게 퇴색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랜드 측은 지난 21일 "직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전반적인 근로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사과문을 냈다. 이랜드파크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등 임직원 4명을 징계하고 체불 임금 83억여원은 1월 중순까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임금 체불 등 불법 근로 환경을 없애 소비자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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