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무심코 쓰는 이 용어, 나만 불편해?

한겨울 필수품 중 하나인 '벙어리장갑'이 때아닌 이슈로 떠올랐다.
'왜 벙어리장갑이지?' '벙어리와 무슨 관계야?'
오랫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이 질문들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입력 : 2017.01.02 08:18

    2016년 한 해는 '혐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혐·한남충·개저씨·틀딱충·급식충과 같이 특정 성별·연령층을 '혐오'하는 신조어가 대거 탄생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이나 국정농단 사태 등의 사회 분위기 탓도 있지만, 사실 '혐오 용어'가 올해만 만들어졌던 건 아니다. 의도적 혐오·차별 용어의 원조 격인 '된장녀(2006년 신조어)'가 등장한 이래 10년간 우리 사회에선 이같은 용어가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앞서 언급한 혐오 용어들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쓰는 말인 반면, '몰라서' 혹은 특별히 대체할 말이 없어 습관적으로 쓰는 차별 용어도 적지 않다. 장애인·성별·인종·연령의 네 가지 분야에서 주로 쓰이는 비하·차별 용어들을 정리했다.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제작한 '손모아장갑 캠페인' 영상 /유튜브 영상 캡처

    ▶ 벙어리 장갑 → 손모아장갑

    '벙어리'란 말을 못하는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벙어리가 장갑과 결합하게 됐을까? 옛날 사람들은 벙어리가 혀와 성대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문에 네 손가락이 붙은 형태의 장갑에 '벙어리장갑'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벙어리장갑이 언어 장애인들을 비하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은 몇 년 전부터 '손모아장갑이라 불러주세요'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캠페인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으며, 연예인과 일부 의류 업체들도 참여했다.

    리우 패럴림픽에서 논란이 됐던 브라질판 보그 광고. 실제 장애인 모델을 쓰지 않고, 일반인 모델 사진에 포토샵 작업을 하여 장애인으로 보이게끔 했다. /보그 브라질 인스타그램

    ▶ 정상인 → 비(非) 장애인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장애인의 반대말이 '정상인'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곧, 장애를 가진 것은 비정상이며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평등선 상에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일컬을 때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몸의 어떤 부분이 온전하지 못함을 뜻하는 '불구(不具)' 역시 장애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 장애우 → 장애인

    한때 장애인을 부르는 은어인 '애자'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장난처럼 쓰이자, 장애자나 장애인을 '장애우(障碍友)'라고 부르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친구를 뜻하는 '우(友)'를 붙여 완곡하게 부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장애우가 'OO의 친구'를 지칭하는 만큼 1인칭으로 쓰기 힘 들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단어 자체에서 '배려해야 할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이란 차별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장애우 대신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순화 캠페인을 펼쳤다. ▷관련기사

    /조선DB

    ▶ 정신분열증 → 조현병
    ▶ 간질 → 뇌전증

    장애는 아니지만, 병명 중에서도 환자를 비하하는 느낌이 나는 것들이 꽤 있다. 과거 '문둥병'이라 불렸던 '한센병'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병 자체가 흔치 않아졌을뿐더러 오랜기간의 순화작업 덕에 굳이 '문둥병'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다. '조현병'과 '뇌전증' 등은 비교적 최근에 순화된 용어다. 각각 정신분열증과 간질을 뜻하는데, 간질의 경우 뇌전증으로 바뀌면서 용어 자체가 폐기되었음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바보, 멍청한 정신상태'를 뜻하는 치매(癡呆) 또한 '인지저하증', '노심병(老心病)'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 정신지체 → 지적장애

    오랫동안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지적받아 온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라는 용어도 올해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국어사전과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쓰지 않던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유독 특수교육법에서만 남아 있었다. 교육부는 올해 3월 법을 개정하고, '정신지체 학생이 아닌 지적장애 학생으로 부르라'는 공문을 교육청에 보냈다.

    ▶ 장님·귀머거리·절름발이·앉은뱅이…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단어임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굳혀져 온 표현인 탓에 그대로 쓰는 차별 용어도 있다. '눈 뜬 장님', '꿀 먹은 벙어리', '귀머거리 삼 년', '절름발이 정책'과 같은 관용어 또는 속담들이 그 예다. 특히 이런 용어는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많이 쓴다. 우리 고유의 속담이고 실제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는 게 아니라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이 말을 듣는 장애인들은 불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 '업 포 러브'의 포스터. 남성 못지않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오늘날에도 성차별 용어가 버젓이 쓰인다. /영화 포스터

    ▶ 여류 OO, 여OO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일컫는 '여류'나 여교사, 여검사, 여배우 등 직업 앞에 '여(女)'를 붙이는 건 대표적인 성차별 용어 사례다. 반대말인 남(男)선생, 남검사, 남배우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이 말은 어떤 재주나 직업을 말할 때 남성을 기준에 두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남성만큼 많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굳이 성별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 ~녀, ~년, 미스(Miss)

    '된장녀'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이슈를 일으킨 여성들에게 'OO녀'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도 비하하는 용어다. '~놈'과 '~년'은 서로 상응하는 단어이지만, 남성에게 쓰이는 '~놈'과 달리 '~년'은 욕설의 의미가 강하다. 2016년 초에는 '병신년(丙申年)'을 이용한 패러디물이 쏟아지며 논란이 됐다. 욕설은 아니지만, 영미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붙이는 미스(Miss)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낮춰 부를 때 종종 쓰인다. '미스 김', '미스 박' 등이 그 예다.

    ▶ 처녀작, 처녀비행…

    첫 작품, 첫 비행 등 완전한 첫 행위를 뜻할 때 습관적으로 붙이는 '처녀~'도 엄연한 성차별 용어다. 반대말인 '총각 OO'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여편네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얕잡아 부르는 '여편네'는 본래 비하의 의미가 담긴 단어가 아니었다. 현재도 쓰이는 '남편(男便)'이란 단어의 반대말인 '여편(女便)'이 그 어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여편이란 단어가 완전히 사라지고 '무식한' '막돼먹은'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와 주로 결합하는 여편네만 남겨졌다. 아내를 지칭하는 용어 중 '집사람', '안사람' 같은 것도 과거 가부장제의 잔재이다.

    ▶ 미망인

    남편이 죽고 혼자 남은 여성을 가리켜 흔히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미망인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목숨을 끊어 곧은 절개를 보여야 한다는 중국의 사상에서 유래했다. 여러모로 현대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데다가, '고(故) OOO씨의 부인'이라고 하면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관련기사

    /조선DB

    ▶ 복부인·치맛바람

    '복부인'이란 용어는 부동산 개발 열풍이 한창이던 1970년대 탄생했다. 남편보다 부동산과 재테크에 더 밝아 복덕방을 들락날락하는 부인이라는 뜻의 합성어다. 그러나 여기에는 투기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치맛바람'이란 용어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여성(엄마)들을 폄하하는 말로 쓰인다.

    어머니를 지칭하며 '학부형'이라고 하는 건 명백한 오류이나, 방송 자막 등에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방송 화면 캡처

    ▶ 학부형 → 학부모

    과거에는 학교의 가정통신문 등에 '학부형(學父兄)'이란 용어가 많이 쓰였다. 한자어대로라면 학부형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을 가리킨다. 학생의 실질적인 보호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칭하는 게 아닌 셈이다. 요즘은 학부형 대신 '학부모(學父母)'가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자를 학부형으로 잘못 말하는 경우가 많다.

    ▶ 브로그래머(brogrammer)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등장한 신조어인 '브로그래머(brogrammer)'는 유행에 민감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남자 프로그래머를 뜻하는 말이다. 미국에서 남자들끼리 부르는 호칭인 '브로(bro)'와 프로그래머가 합해졌다.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창백한 얼굴에 지저분한 몰골로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괴짜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엔 여성의 실리콘밸리 진입이 어려운 현실이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관련기사

    어린 시절 '잡종', '혼혈'이라고 놀림 받았다고 고백한 걸그룹 멤버 전소미. /방송 화면 캡처

    ▶ 혼혈아 → 다문화가정 자녀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는 20만 7,000여 명으로, 전체 자녀 수의 2.2%에 달한다. 이처럼 다문화가정도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하나의 가족 형태가 되면서, 오랫동안 쓰이던 '혼혈아'라는 표현도 법률에서 사라졌다. 한쪽 부모가 외국인인 것을 비하하는 의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피가 섞였다'는 혼혈아 용어 대신 '다문화가정 자녀'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 DB

    ▶ 탈북민·새터민

    2004년 통일부는 국민 공모를 통해 '새터민'이란 단어를 새로 만들었다. 북한 이탈 주민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기존에 쓰던 탈북자, 탈북민이란 용어가 거부감을 준단 이유에서였다. 새터민이란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주민이란 뜻이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일부 탈북자들은 "탈북자를 먹고 살기 위해 북한서 넘어온 사람들로 매도한다"며 새터민이란 단어에 반발했다. 실제로, 탈북민의 대체어가 새터민이 될 수 있느냐는 건 논란이 많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인데 굳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고 따로 규정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관련기사

    ▶ 조선족 → 중국 교포

    조선족의 본뜻은 한민족 혈통을 가졌으면서 중국에 거주하고 중국 국적을 가진 주민들을 말한다. 사실 조선족이란 말 자체엔 비하의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가사도우미나 식당 종업원 등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낮춰 부르는 데 쓰이게 됐다. 여기에 조선족 사람들이 성폭행·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잦아지며 '조선족'이라는 말에 비하와 경멸의 의미까지 담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선족 대신 '중국 교포'라고 부르는 문화가 확산돼야 인식 개선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 불법 체류자 → 미등록 외국인

    전 세계적으로 '불법 체류자'라는 용어는 점차 순화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은 이 단어 대신 '서류 미비자'라는 용어를  쓴다. 일부선 '서류 미비자'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며 '비시민권자', '비승인 이민'이라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 관련 법에선 '불법 체류자' 대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중국인 방송인 장위안은 한 프로그램에서 "짱깨라는 댓글에 기분 나빴다"고 말했다. /방송 화면 캡처

    ▶ 짱깨·왕서방·쪽발이

    한국인들이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하해 부르는 용어 중 대표적인 것들이 짱깨·왕서방·쪽발이다. '짱깨'는 가게 주인을 뜻하는 중국어인 '장궤'가 변형된 것인데, 중국 음식인 짜장면과 발음이 비슷해 중국인을 뜻하는 은어로 자리 잡았다. '왕서방' 역시 중국의 성씨인 '왕씨'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다. '쪽발이'는 일본인을 비하하는 용어인데, 일본에서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갈라지는 신발을 신는 것에서 유래했다. 중국과 일본에도 각각 한국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이 발달하며 더욱 심해지고 있다. ▷관련기사

    ▶ 오리엔탈(Oriental)·칭크(Chink)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비하하여 일컫는 대표적인 두 용어가 오리엔탈과 칭크다. 오리엔탈은 본래 '해가 뜨는 동쪽'을 뜻하지만, 인종을 구분해 지칭하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이에 최근 미국은 공문에서 오리엔탈이란 단어를 퇴출시키고, '아시안' 또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쓰도록 했다. 반면 '찢어진 눈'을 뜻하는 '칭크'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많이 쓰는 은어다. 본래는 미국의 백인이 중국계 이민자를 부르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아시아인에게 쓴다. 특히 해외 무대에서 뛰는 아시아인 운동선수들이 관중들로부터 이런 야유를 받는 경우가 많다.

    ▶ 니그로(Negro)

    이미 미국의 공적 영역에서는 사라졌지만, 니그로는 인종 차별에 관해 가장 잘 알려진 용어다. 우리말로는 '검둥이' 쯤으로 해석된다. '니그로'는 15세기에 노예무역과 함께 만들어진 단어인데, 현대에 들어 차별 및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며 미국 내에서 금기어가 됐다. 니그로를 대체하는 공식 용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코트라(KOTRA)도 '화이트닝'이란 표현이 인종 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헬스조선

    ▶ 화이트닝 → 브라이트닝

    화장품 광고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이트닝(whitening)'이란 표현 속에도 인종 차별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피부가 하얗게 되길 원하는' 한국에서는 괜찮지만, 다양한 인종이 사는 국가에서는 소비자로 하여금 백인 우월주의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화이트닝 대신 '브라이트닝(brightening·밝게 만드는 것)'이란 용어가 흔히 쓰인다. ▷관련기사

    /조선DB

    ▶ 살색 → 살구색

    '살색 크레파스' 논쟁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특정 인종 피부색을 색깔 명칭으로 사용하는 건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고, 2002년 살색의 명칭이 '연주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초등·중학생들이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는 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항의했다. 인권위는 어린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2005년 연주황을 '살구색'으로 변경했다. 요즘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선 살색이 아닌 살구색이 더 흔한 이름이 됐지만, 습관적으로 살색을 사용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

    대놓고 '꼰대들의 이야기'를 표방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방송 화면 캡처

    ▶ 꼰대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령과 관계없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대접받으려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두루 사용된다. 비하의 뜻이 담겨있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이기주의와 우월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인다. '꼰대 테스트', '꼰대 되지 않는 법' 등이 활용 예다. 비하 용어에서 유행어로 거듭난 '아재'처럼 꼰대도 대중문화를 통해 의미가 확장된 사례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지칭한 꼰대는 권위주의에 젖은 늙은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을 보여줬다. ▷관련기사

    ▶ 새파랗게 젊은것들

    '꼰대'나 '노땅'은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데, 반대로 젊은 사람을 비하해 일컫는 관용어도 있다. '새파랗게 젊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등이 그렇다. 이런 말 속에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속뜻이 담겨 있는데, 이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보여주는 한 예다.

    ▶ 고령자 → 장년

    한자어로 나이 많은 사람, 법적으로 55세 이상을 지칭해 온 '고령자(高齡者)'라는 용어는 2017년부터 '장년(長年)'으로 바뀐다. 2012년부터 추진되어 온 명칭 개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고령자'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70세 정도이던 1991년 법률에 등장했기 때문에, 요즘 시대엔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고용노동부 역시 기대수명 연장으로 실제 그 연령대의 국민이 자신을 고령자로 인식하지 않으며, 고령자라는 용어 때문에 고용시장에서도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배려의 역효과? ┃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못 하는 나라

    /영화 '나홀로 집에' 스틸컷.

    오랫동안 배려·차별 금지를
    외쳐 온 미국, 이제는
    "우리 정체성을 찾을래"

    기독교인의 나라이자 크리스마스의 상징인 영화 '나홀로 집에'를 만든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할 수 없다. 물론 법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말을 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성탄절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지 않은 지는 40년이 다 되어 간다. 미국인들은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는 표현을 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다(多)인종 국가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인종 차별에 대한 사회 이슈가 많았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쓰지 않는 이유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미국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나 중동, 유대계의 명절도 있는데 유독 크리스마스만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는 한술 더 떠, 오리건 주의 한 교육청이 산타클로스 형상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풍조를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라고 한다. 한국말로 '정치적 올바름'이란 뜻인데, 차별적인 언어나 활동을 중립적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미국 사회를 지배해 온 'PC' 감성이 최근 역풍을 맞았다.

    트럼프 "메리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외치게 해주겠다"

    /연합뉴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유에 대해 'PC(정치적 올바름)'의 과도함을 꼽는 이들이 많다. 다른 인종·성별·종교 등에 대한 지나친 '배려의 요구'가 백인들의 거부감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백인들의 분노를 잘 파고들었다. 그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외치게 해주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에 열광하는 이들이 있으면 반대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미국은 'PC파'와 '반(反) PC파' 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중이 쓰는 용어는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차별적인 용어가 많다면 그만큼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용어들이 많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란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 쓰던 차별 용어들에 대해 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단어만 바꿀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식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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