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의 해골을 밟으며 주위를 살핀다. 곧이어 생존자를 찾아 사살한다. 영화 터미네이터2의 한 장면이다.
공상 영화에 등장하던 터미네이터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스크린에서 뛰쳐나와 우리 눈앞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5일(현지 시각)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킬러 로봇'의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킬러 로봇은 터미네이터의 다른 이름이다. 2012년 국제인권감시기구는 킬러 로봇을 '사람의 의지 없이 공격하는 무기'로 정의했다.
강대국들은 킬러 로봇을 이용한 전쟁을 할 것인가를 놓고 이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교도통신은 "중국이 지난 12~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킬러 로봇'을 규제하는 문제에 대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처음으로 찬성했다"고 24일 보도했다. 미·중은 유엔의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을 통해 킬러 로봇 문제를 연구할 전문가 회의를 만드는 데 합의했지만, 러시아는 참석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킬러 로봇에서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러시아가 기술 공개와 규제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11월 주변 6㎞ 안 사람과 물체를 추적해 저격할 수 있는 킬러 로봇을 개발해 국경에 배치했다. 아직 이 로봇의 타깃은 사람이 아니라 '정찰 무인 드론'으로만 한정해 놓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은밀하게 접근해 적을 살상할 수 있는 12㎏짜리 소형 킬러 로봇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미국은 살상용 무인 드론부터 적 잠수함을 자력으로 격침할 수 있는 무인 전투함까지 다양하게 개발했다. 미국의 인공지능 조종사는 인간 베테랑 조종사를 상대로 한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완승을 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한발 더 나가 일반 드론에 인공지능을 심어 타깃을 스스로 추적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킬러'로 만들 수 있는 의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 "미 국방부가 무기용 인공지능 개발을 국방 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지난 4월 "2017년이면 인공지능을 가진 킬러 개발과 관련한 기술적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킬러 로봇 개발은 윤리적 논쟁을 낳고 있다. 킬러 로봇이 여성·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독재 정권이나 테러리스트들이 인종 청소 도구로 킬러 로봇을 악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스티븐 호킹 박사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 등 저명인사 1000여 명은 작년 7월 인공지능 킬러 로봇 개발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론 머스크는 "킬러 로봇의 개발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국제법 준수 문제라면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숱한 민간인 사상자가 난 이유는 대부분 인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또 전투병을 로봇으로 대체해 로봇끼리 싸우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윤리적 논란에도 기술 발전의 속도로 볼 때 킬러 로봇의 등장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 시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에 달린 것 같다. 트럼프 인수위에 참여하는 스티븐 그로브스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미국은 유엔에서 추진 중인 (킬러 로봇) 금지 움직임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경쟁국들이 같은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왜 (킬러 로봇) 개발을 중단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그는 미국이 경쟁국과 무기 경쟁에서 가장 확실한 우위를 가진 부분이 '킬러 로봇'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군비 확장을 통해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킬러 로봇 도입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폴리티코는 "21세기 전쟁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에 있다"고 했다. "나는 돌아올 거야(I will be back)"라는 영화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 대사처럼 터미네이터가 진짜 우리 눈앞에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