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경제부 차장

내년에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세종시에 있는 기획재정부 청사로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만나러 가면 어떨까?

두 사람은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0층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지난 1월 유 부총리 취임 직후 만나고 11개월 만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만들어낸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화는 체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에 나쁜 소식이다. 슬금슬금 오르던 시중 금리 오름세에 속도가 붙으면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에 문제가 생긴다.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러니 국민들에게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가 악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났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어느 한쪽이 바뀌거나 이번처럼 특별한 일이 있으면 만난다. '회동'이라는 딱딱한 이름이 붙고, 부총리가 한은 총재를 찾아가서 만난다는 공식을 지킨다.

부총리가 한은을 방문하거나, 한은에서 멀지 않은 은행회관이나 프레스센터에서 만난다. 기재부가 과천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은 총재가 기재부를 방문하는 일은 금기(禁忌)라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어서 안 된다"고 한은 사람들은 말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최근 경제·금융 현안과 대응방향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유 부총리까지 3명의 경제부총리와 만났지만, 이런 공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2014년 이 총재 취임 직후 한은을 방문했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었다"면서 A4 용지 크기의 이 총재 캐리커처를 액자에 넣어 선물했다. "이 총재가 허락한다면 격의 없이 만나서 의논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경환 전 부총리와는 프레스센터와 은행회관에서 두 번 만났다. 최 전 부총리는 "다른 나라는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만나는 게 뉴스가 안 되는데 우리는 뉴스거리"라며 "자주 만나서 뉴스거리가 안 되게 만들자"고 했다.

역대 부총리들은 예외 없이 한은 총재를 자주 만나고 싶어 했지만, 한은 총재들은 내켜하지 않았다.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 총재는 그나마 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 상황이 급변할 때면 정부 측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에도, 지난 11월 미국 대선 직전에도 해외 출장 일정을 단축하고 한은 총재실을 지켰다. 미국 대선 다음 날 유일호 부총리가 긴급 소집한 회의에도 참석했다. 한은 총재가 부총리 주재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내친김에 내년 초 이 총재가 세종시로 내려가서 유 부총리의 손을 잡고 "고생하십니다. 힘을 모아서 경제를 살려 봅시다"라고 하면 어떨까.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어 정부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럴 때 중앙은행 총재가 한 걸음 더 나서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은과 기재부가 제대로 '이인삼각(二人三脚)'에 나서겠다고 하면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 줄 수 있을 듯싶다.

얼마 전 한은 고위 관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더니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말을 돌렸다. 전례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이 총재라면 기재부를 방문하는 파격이 가능할 듯도 싶어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