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이 사랑한 종로서적… '종로타워'에서 14년만에 부활, 23일부터 영업
시인 장석주 "종로서적은 내 영혼이 숙성된 곳" "소설가 김연수 "위로 받고 싶어 거기로 간 것"
교보 문고, 영풍 문고, 종로 서적... 3대 서점 부흥 시대 다시 열리나
“토요일 저녁의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들은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기를, 혹은 자신도 누군가의 이름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인파로 가득한 종로 거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소설가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한 구절처럼, 종로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던 ‘종로서적’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종로타워 지하 2층에 14년만에 부활했다.
◆ 문인이 사랑한 ‘종로서적’…“청년들의 정신적 부표가 된 장소였다”
가장 유서깊은 서점이었던 종로서적은 1907년부터 2002년까지 종로 2가를 지켰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고향 김천에서 상경해 치른 대입 시험을 망친 뒤, 아버지를 모시고 종로서적에 갔던 기억을 이렇게 표현했다. “종로서적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날 저녁 울음을 터뜨렸을지 모른다. 소설가가 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위로 받고 싶어 거기로 간 것이다.”
'심야', '절벽 시집' 등을 집필한 시인 장석주는 종로 서적을 "내 영혼이 숙성된 곳, 숨쉬는 것 말고는 미래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던 청년에게 정신적 부표가 된 장소, 미친 세상에서 내 유일한 은신처이자 망명지가 됐던 곳"으로 묘사했다.
청소년 소설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동화작가 이금이는 "종로서적 로고가 있는 포장지로 싼 책을 가슴에 안으면 비싼 옷을 입거나 멋진 가방을 든 것보다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문인들이 과거 종로서적을 사랑하고 추억했다. 현재 문학계를 이끌고 있는 문인들에게 그 시절 종로서적은 문학적 감성과 영혼을 살찌우는 ‘요람’이었다.
◆ 위치도 주인도 다르지만 옛 향수 자극해…‘종로서적’ 이름만으로도 추억 되살아나
23일 오후 3시, 유동인구가 적은 평일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종로서적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온 어르신과 나란히 서점을 구경하는 중년 부부 등 나이가 지긋한 고객이 특히 눈에 띄었다.
추억을 더듬어 종로서적을 찾은 이상식 씨(60세)는 과거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며 “그때는 책도 높이 쌓여 있었고, 통로도 미로처럼 구불구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옛 종로서적은 현재 종로서적보다 좁고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었다”며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묘사했다.
친구인 이씨와 함께 이곳을 찾은 송봉원 씨(60세) 또한 “옛날에는 교보문고, 영풍문고도 없었기 때문에 종로서적이 종로의 랜드마크였다”며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면 무조건 ‘종로서적 건너편에서 보자’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76년도에 상경해서 80년대 초반까지 종로서적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종로서적에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는 장미은 씨(43)는 “비록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설레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며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 자체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1907년 예수교서회가 창립했던 구(舊) 종로서적은 가장 역사가 긴 서점이었으며, 최초로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서점이기도 했다. 청춘들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고, 종로 2가를 95년간 지켜온 대한민국 1호 서점이었다. ‘양우당’ ‘삼일서적’ 등 80년대 종로 2가의 문학 전성기를 견인했던 유서깊은 서점들이 폐업하고 나서도 오롯이 종로 2가를 지켜왔다. 그러나 중소 서점들의 폐업과 함께 인터넷서점의 등장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기 못하면서 부도를 맞이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 종로서적은 영풍문고 전무였던 서분도 대표가 설립한 법인 ‘종로서적판매’에서 운영하며, 예수교서회나 창립자 가족과는 전혀 무관하다. 위치와 운영자가 모두 다른 ‘새 종로서적’인 것이다. 서분도 대표는 "새로운 종로서적은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편안한 서점을 목표로 한다"며 "만남의 장소였던 옛 종로서적처럼서점 앞에 만남의 광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종로서적 김성열 부점장은 “옛날 종로서적이 갖는 추억때문에 향수에 이끌려 오시는 고객이 많다”며 “‘여기가 예전 종로서적이냐’라고 많이들 물어보신다”고 말했다. 과거와는 많이 다른 모습에 실망을 표하는 분은 없냐고 묻자 “실망 보다는 반가움을 표하는 분들이 더 많다”고 밝혔다.
모습과 위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굳이 종로서적의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서는 “‘서점의 부활’이 주된 키워드”라며 “옛 종로서적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위치도 인테리어도 그 옛날 추억 속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종로서적은 그 네글자 이름만으로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김성열 부점장은 “옛 종로서적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추억의 종로서적 사진전’ 오픈행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억의 종로서적 사진전’은 내년 1월 31일까지 사진 공모를 받을 예정이며, 종로서적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메일로 보내면 소정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