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포퓰리스트]⑦ "약자 편에 서는 게 익숙"...스페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

조선비즈
  • 안소영 기자
    입력 2016.12.21 12:15

    2011년 5월15일 정부의 긴축정책에 고통받던 스페인 시민 800명은 실업과 빈부격차, 부패, 공공서비스 삭감 문제에 분노하며 거리로 나와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스페인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내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시위는 ‘인디그나도스 운동(분노한 사람들)’나 ‘15M(5월15일) 운동’으로 불린다. 유명한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파블로 이글레아시스 콤플루텐세 대학교 교수는 이 15M 운동을 조직적 운동으로 만들었으며 2014년 신생정당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포데모스는 반유럽연합(EU), 반긴축, 실업률 제고, 공공복지 확대, 기초소득 보장 등 급진좌파 정책을 주장하며 스페인 경제의 약점을 발판삼아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만에 120만표를 얻고 유럽의회 선거에서 5석을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왼쪽).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만에 유럽의회에서 5석을 차지하고 스페인의 양당정치체제를 깨는 등 성과를 냈다. / 연합뉴스 제공
    포데모스의 기초단위는 풀뿌리 조직 ‘서클’(circulos·관심사를 바탕으로 하는 오프라인 대중모임)이다. 함께 하고자 하면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운영 자금은 크라우드 펀딩(여러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마련된다. 포데모스는 이러한 서클 수백개를 모아 온라인 네트워크로 소통하게 하면서 하나의 정치 결사체를 만들었다.

    디지털을 활용하는 포데모스는 온라인 참여 프로그램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었다. 시민들은 ‘플라자 포데모스’라는 온라인 공론장에서 의원과 문답을 할 수 있으며, 제안을 올리면 실행여부를 실제로 결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당원이 아니라도 총선 후보를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익숙했던 정치학자, 정치에 나서다

    포데모스를 창당한 이글레시아스는 1978년생 마드리드 출생이다. 그의 어머니는 노동조합 변호인, 아버지는 근로감독관이자 역사학 교수였다. 이글레시아는 10대 때부터 정치에 활동적이었으며 스페인 코뮤니스트 청년동맹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스위스의 유럽대학원(EGS)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이글레시아스는 정치학을 공부하면서도 영화예술이나 정신분석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후 그는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쳤으며 명예교수로도 임명됐다. 그는 2002년 이후 학술지에 30개가 넘는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했다.

    그렇지만 이글레시아스는 학업에만 몰두하지 않고 방송이나 언론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몇 년간 인터넷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2003년 이글레시아스는 텔레K의 라투에르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11월에는 뉴스쇼의 해설자로도 등장했다. 2013년 5월에는 정치토크쇼에도 나갔다.

    이글레아시스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해 왔다. 그는 지난해 한 토론에서 “내 DNA에는 패배가 새겨져 있다”고 전했다. 토론에서 그는 “증조부는 총살당했으며 할아버지는 사형선고를 받고 5년간 감옥에 있었다”고 전했다. 또 “할머니는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를 당했고 아버지도 감옥에서 있었던 적 있으며 어머니는 정부를 피해 정치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1930년대 극심한 좌우대립을 겪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좌파인 인민전선 내각이 설립되자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시작됐다. 국제전으로 번졌던 스페인 전쟁은 반정부측(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코 정권은 1939년부터 1975년 프랑코 총통이 사망할 때까지 철권 통치를 지속했다. 이후 1975년부터는 민주화가 이뤄졌다.

    ◆ 불평등·부패 비판하는 포데모스…창당 4개월만에 유럽의회 5석 얻어

    30대 정치학 강사인 이글레아시스는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15M시위를 기반으로 2014년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포데모스는 자원봉사와 시민 지원금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해 적은 돈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당 소속 의원들은 의원 연봉 제한, 퇴직 연금 거부, 온라인 회계장비 지출 기록 등으로 특권을 버렸다.

    포데모스는 좌익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경제적 불평등, 실업 등 불만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포데모스는 최저임금 인상, 공직자 봉급 상한액 제한, 주 35시간 근무, 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으로 구제금융을 지원한 은행·설비 국유화, 이익창출 기업 해고 금지 등 대담한 경제 정책을 제안했다. 그는 또 지배계급으로부터 힘을 빼앗아 대중에게 재분배하는 것을 공언했다.

    포데모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흔들린 스페인 경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으로 유럽연합 탈퇴, 반긴축, 공공복지 확대를 외쳤다. 스페인은 경기 침체를 겪다 2014년부터 간신히 경제 성장이 재개됐지만 지난해 실업률은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았다. 국가부채도 1조200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스페인 경제를 “위험하고 지속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 경제를 비판하고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운 포데모스의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포데모스는 2014년 5월, 유럽의회선거에서 120만표(7.98%)를 얻어 5석을 얻었다. 창당 4개월 만에 대단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포데모스 탄생 전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를 좌절감 표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스페인에 실제로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데모스를 선택하면서 기성정치에 대한 비판을 보여줬다. 투표 이후, 사회당의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대표는 사임했으며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왕위를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포퓰리즘 정당인 포데모스의 인기가 늘어난 것은 경제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BC는 “유권자들이 지난 선거 때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포데모스에 투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연이은 총선 모두 제3당 차지…양당정치 깬 신생 정당

    포데모스는 지난해 12월에 열린 총선에서 21%의 지지율로 350석 중 69석을 차지해 제3당이 됐다. 당원수도 국민당에 이어 2위로 올랐다. 각종 언론들은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양당체제를 깨버리고 2년도 안된 포데모스가 3위에 올랐다”며 “스페인의 정치지형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포데모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칭찬했다. 뉴스위크는 “포데모스의 서클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로 부패한 엘리트 정당에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의 교과서 같은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 올해 이뤄진 재총선에서 1당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제3당을 차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 블룸버그 제공
    당시 언론은 이글레아스에 대해 “실제적 지식을 가지고 수년간 음모를 꾸민 지도자로 계산능력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또 “이글레아스는 젊고 재능있는 연설가로 정치적 외부인이었지만 학문을 포기하고 부패한 대군주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정치인의 일원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4달 간 정부 구성이 이뤄지지 않아 올해 6월 열린 스페인 사상 초유의 재총선에서는 생각만큼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재총선 전 여론조사에 따라 포데모스는 제1당을 차지하고 좌파 연립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포데모스는 중도우파 집권 국민당(PP),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OSE)에 이어 또 제 3당을 차지했다. 의석도 71석을 확보해 예측보다 100만표 이상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는 재총선 결과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르게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을 밝혔다.

    AFP통신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브렉시트 쇼크로 다가오면서 스페인 유권자들이 급진적인 공약을 가진 포데모스를 외면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총선에 열 달 간 무정부상태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마리아노 라호이 국민당 대표가 총리를 연임하게 됐다. 라호이 대표는 브렉시트 이후 “안정성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두 손’이라고 표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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