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95세 이모씨는 심장 대동맥 판막이 망가진 환자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밖에 나가질 못했다. 3년 전부터 서울성모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으며 단기간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겨우 견뎌왔다. 그러다 이달 초 한계에 도달했다. 수술 아니면 살길이 없는 상태가 됐다. 환자 가족들은 95세 나이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숨이 차 고통스러워하는 이씨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이에 고난도 복합 심장 수술이 100세 가까운 환자에게 이뤄졌고, 성공리에 마쳤다. 고려대병원에서는 전신 쇠약으로 수술 치료가 불가능해진 고령의 대동맥 판막 환자를 비(非)수술 요법으로 인공판막을 끼워 극적으로 살려냈다. 바야흐로 '초고령 노인 심장 치료 시대'가 열렸다.
◇95세에 3가지 심장 수술
심장 박동으로 피가 대동맥으로 나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게 정상인데, 95세 이씨는 대동맥 판막이 너덜너덜해져 거꾸로 돌아오는 상태였다. 판막폐쇄부전증이다. 여기에 대동맥 입구와 상단이 퇴행성 변화로 탄력을 잃고 풍선처럼 펑퍼짐해졌다. 그러니 피가 전신으로 뿜어 나가지 못하고 심장과 대동맥 입구에서 맴도는 응급 상태가 됐다.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김환욱 교수팀은 지난 7일 망가진 대동맥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갈아 끼우고, 늘어난 대동맥 입구를 조여주고, 상단을 여미는 3가지 수술을 동시에 했다. 수술은 뇌로 가는 혈류만 빼고 몸 전체 피 흐름을 차단한 상태에서, 체온을 28도까지 낮춘 다음에 이뤄졌다. 체온이 10도 정도 내려가면 신진대사가 정지돼 신장이나 간에 피가 한 시간 넘게 안 가도 장기가 손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사이 재빨리 수술을 마쳐야 한다.
이 수술은 성공리에 끝나 이씨는 현재 병동을 돌아다닐 정도로 정상적인 회복 과정에 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집도의 김환욱 교수는 "심장 기능 말고는 다른 기능이 비교적 괜찮은 환자여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4시간 전신마취 등을 견딜 기초체력을 가진 환자여야 수술 가능하다"고 말했다. 80세 이상 퇴행성 대동맥 판막 질환자는 2010년 1703명에서 2014년 3796명으로 최근 5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대동맥 판막 비(非)수술 치료 활발
76세 여성 안모씨는 2009년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다. 그해에 대동맥 판막과 승모판 역류증으로 인공판막 치환술도 받았다. 하지만 대동맥 판막 역류증은 더 진행돼 피를 전신으로 뿜어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심장 기능이 정상의 20%로 떨어졌지만, 호흡 곤란과 전신 쇠약으로 인해 가슴뼈를 여는 심장 수술은 불가능했다. 안씨는 화장실 갈 때만 빼고 종일 누워만 지냈다.
이에 고려대병원 순환기내과 유철웅 교수는 마지막 수단으로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TAVI·타비)'을 지난달 18일 시행했다. 수술하지 않고 사타구니 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관을 심장에 올려서 그 안으로 돌돌 말린 인공판막을 밀어넣은 후 대동맥 판막 자리에 우산 펴듯이 설치하는 첨단 시술이다. 7년 전 수술 받은 안씨의 인공판막을 고리로 삼아 타비 인공판막을 새로 장착하는 시술이 성공하면서 안씨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현재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고 유 교수는 전했다.
타비 시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한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심장학회 이사장) 교수는 "고령 사회를 맞아 퇴행성 심장 판막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텐데 이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비 시술비는 2000만~3000만원으로, 현재 환자가 비용의 80%를 대고 건강보험이 20% 부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