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國政)을 함께 책임져야 할 여야(與野) 정당들과 행정부가 마찰음을 내면서 국정이 헛돌고 있다. 탄핵 사태의 공동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 친박(親朴)계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국정 전면에 다시 나서려 하자 야당이 협의를 거부하면서 생긴 정치권 갈등이 국정 마비의 시발점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과만 국정 협의를 하는 것에 난색을 보이면서 정부와 국회 간의 협조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친박의 당권 집착→야당의 반발→정부의 고민'이 삼각(三角)으로 꼬리를 물면서 국정의 활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은 지난 12일 '여야정(與野政) 협의체' 운영에 합의했지만 야당들은 이정현 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교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여당이 빠지면 '야정(野政) 협의체'가 된다.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 대표는 13일에는 국회에서 만나 황 권한대행에 회동을 제안하면서도, 참석 대상에서 새누리당 대표는 제외했다. 윤관석 민주당 대변인은 "현재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라 이번 회동에 참여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에 이어 친박 지도부 배제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추미애·김동철·심상정 등 야 3당 대표들은 황 권한대행에 대해서는 "한시적 과도 대행 체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회와 협의 없이 일상적 국정 운영을 넘어서는 권한대행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야당들이 '여야 협력'보다는 '야권 공조'로 나서자 황 권한대행 역시 협의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여야정 협의체'가 '야정(野政) 협의체'라면 수용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정치권에서 먼저 이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야당과의 협력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황 권한대행은 14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날 예정이지만, 이 회동에 정당 대표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선 "여당, 야당, 행정부의 국정 협의가 모두 막힌 상황의 출발점에는 여당 친박계가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을 풀어 가려면 친박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서 국정 마비가 생겼는데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함께 져야 하는 친박계가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국민 정서상으로도 말이 안 되지 않으냐"며 "친박계가 물러날 경우 '여야정 협의체'를 거부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도 "여야가 함께하는 자리라면 황 권한대행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현재 여당이 소리(小利)에 집착해 당권 투쟁을 할 상황이냐"며 "희생을 해도 부족한 사람들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