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던 머나먼 땅 한국에서 '소리'를 선물 받았네요."

12일 서울아산병원 입원실. 네팔 청년 고쿨 타망(18)군은 한국 의료진 앞에서 공손히 합장하며 '나마스테' 하더니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 입 모양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겠어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목소리도 잘 들리겠네요."

가난은 타망군에게서 소리를 차츰 앗아갔다. 두 살 때부터 만성 중이염(中耳炎)을 앓아 고막이 뚫리고 귀에서 고름이 흘렀다. 그러나 식구들은 타망군에게 약 사 먹일 형편도 못 됐다고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친구들 목소리를 눈살 찌푸리고 입 모양으로 겨우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교사 목소리가 안 들리니 학년 진급도 못 해 낙제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의료진 초청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중이염 수술을 받은 네팔인 고쿨 타망(오른쪽 끝)군과 상보 타망(오른쪽에서 둘째)씨가 가족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시련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작년 4월 네팔 대지진이 나자 타망군이 사는 집이 무너져 내렸다. 목숨은 구했지만, 노숙을 하는 처지가 됐다. 지진 먼지로 잔뜩 뿌예진 공기는 타망군의 양쪽 귀에 치명적이었다. "학교에 가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외톨이가 됐어요."

그에게 지난 9월 의료 봉사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네팔 방문은 놓칠 수 없는 '희망'이었다고 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의료진 30여명이 온다'는 소식은 이 마을 저 마을로 빠르게 퍼졌다. 타망군과 그의 어머니는 3시간을 걸어 임시 진료소를 찾았고, 2시간 넘게 줄을 선 끝에 한국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딱한 사연에 중이염도 심각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타망군을 한국으로 초청해 수술시켜 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네팔 중이염 환자 상보 타망(22)씨도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6일 진행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종우 아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타망군의 청력은 일반인의 70% 정도로 올라왔고 차츰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온정에 지진의 상흔까지 이겨낼 용기를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