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개천 龍' 사라지는 사회

    입력 : 2016.12.13 03:16

    입시 철 신문 사회면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절이 있었다. 행상하는 홀어머니 모시고 나무 궤짝 책상 삼아 공부한 학생,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학원도 못 가본 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수석 합격했다는 스토리를 읽었을 때다. '교과서와 헌 참고서로만 공부했다'는 그들 얘기를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하며 꿈을 키운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1960~70년대쯤 이야기다.

    ▶2004년 서울대에서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라는 자료를 냈다.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입학생 1만2500명의 가정환경을 분석한 보고서다. 33년 동안 고소득 자녀 입학은 17배 늘었고, 농어촌 학생 비율은 그동안 5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는 게 연구 요지다. 그동안 소득이 늘고 농촌 인구가 줄기는 했지만 정도가 심하다. 그리고 다시 13년이 지난 올해, 서울대 신입생 절반 이상이 특목·자사고와 강남 지역 학생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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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 학력을 결정하는 현상은 선진국에선 오래된 사회문제다.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는 저소득층 자녀 학력을 끌어올리고 입시에서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우리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정권마다 새 교육정책을 시도했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를 바꿀수록 가난한 집 학생이 불리해진다. 학교 현장에 새 정책이 뿌리내리기 전 학원에서 핵심을 뽑아내 가르치기 때문이다. 고액(高額) 학원을 다녔는지가 입시 성패를 가른다.

    ▶사(私)교육 시장 규모가 한 해 18조원이라고 정부는 말한다. 하지만 부모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그 배(倍)다. 지난해 서울 시민 1000여 명에게 가장 큰 관심이 뭐냐고 물었더니 65%가 '자녀 사교육비 증가'라고 답했다. 아이를 낳아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3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엄마 덕에 체육 특기생으로 부정 입학한 스무 살 젊은이가 "돈도 실력"이라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그래도 우리가 선진국보다는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이 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OECD 조사를 보니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학력·소득이 자녀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44점)이 미국(33점)·덴마크(34점)·영국(37점)·일본(42점)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선진국은 부모 소득이 자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주는데, 우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교육 사다리'가 작동을 멈췄는데도 나라를 이끄는 분들은 정권 쟁탈에만 관심 있지 무엇이 고장 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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