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1982년 입학생) 30여 명이 지난 3월 경기 용인에서 졸업 3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을 가졌다. 학창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한 졸업생이 "우리 땐 대학 성적이 나빠도 취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 후배들은 졸업해도 취업이 정말 어렵다더라"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돕자"고 제안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마침 9월에 졸업 30주년 홈커밍데이 준비하느라 돈을 모아야 하는데 행사 비용으로 쓰지 말고 그 돈을 후배들 장학금으로 내놓자"며 화답했다.

오창석(52)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82학번들은 가난과 고학(苦學)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졸업 정원제' 세대였기 때문에 후배들을 돕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졸업 정원제는 신입생을 졸업 정원보다 20% 더 뽑은 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제도로 1980년대 초반에 시행됐다. 82학번은 워낙 입학자 수가 많다는 뜻에서 '똥파리'(82)라는 별명이 붙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동문들이 지난 9월 23일 열린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앞줄에 앉은 남익현 서울대 경영대학장, 민상기·신유근·곽수일·임종원(왼쪽부터)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기생이 많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졸업 정원에 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학과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학생은 돈을 벌면서 성적도 올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서울대 경영대 82학번 동문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안계환(52) 파라텍 대표는 "그땐 한 달에 8만~9만원 정도 하던 하숙비를 낼 돈이 없어 친구 하숙방에서 먹고 자며 옷까지 빌려 입고 다닌 동기들이 허다했다"고 술회했다. 오후 3시에 학교 구내식당이 문 닫을 때마다 남은 밥을 얻어먹고 설거지를 대신해주며 겨우 학교에 다녔는데 이번 모금에서 '그때 기억이 선하다'며 500만원을 낸 동문도 있다.

처음 계획한 목표 액수는 1억원이었다. 그런데 한 동문이 2억5000만원을 쾌척해 모금 목표를 금세 달성했다. 거액을 내며 앞장서는 동문이 나오자 모금에도 탄력이 붙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졸업생도,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학과 졸업 여행 때 동기 도움을 받아 한라산 정상까지 올랐던 친구도 소식을 듣고 돈을 보내왔다 한다. 79학번인 고성천(58) 삼일회계법인 세무 대표는 "내가 학번은 위지만 군대를 일찍 다녀와 주로 82학번과 어울렸으니 나도 82학번으로 치고 함께하게 해 달라"며 성금을 전달했다. 이렇게 4개월 만에 178명이 5억5000만원을 냈다. 서울대 어느 단과대에서도 한 학번이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은 적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9월 23일 서울대 경영대에서 열린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모은 돈을 서울대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남익현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이날 "흔히 서울대 출신은 잘 뭉치지 못해 '모래알 같다'고 하는데 82학번 동문분들을 보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 미담은 뒤늦게 알려졌다. '경영대 똥파리'들이 모은 돈은 내년 1학기부터 경영학과 재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