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경북 경산에서 걸려온 '民心' 한 통

    입력 : 2016.12.06 03:12

    광화문 촛불만 민심 아니오
    서울서 천릿길 농부의 마음은 대통령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
    연민, 예의, 용서 없는 횃불은 참된 민주주의라 할 수 없어
    겨울 裸木처럼 나부터 성찰해야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나는 경북 경산에 사는 팔순 늙은이올시다. 신문이라고는 그저 조선일보만 30년 넘게 보아온 골수 독자요. 낼모레 저승 갈 사람이 느닷없이 전화 걸어 큰 실례인 줄 아오만, 김 선생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용기를 내었소.

    중학교 중퇴자인 나는 선친 일구시던 땅에 평생을 엎드려 살면서 다섯 남매 키운 게 전부인 사람이오. 대학 문전에도 못 가본 내게 조선일보는 큰 낙이었소. 새벽녘 밭일하고 돌아와 아침밥 한술 뜨고 나면 신문을 방바닥에 대(大)자로 펼쳐놓는 일이 즐거웠소. 숭늉 한 사발 훌훌 마시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나라 안팎 대소사는 물론이요, 세상 돌아가는 판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니 심봉사 눈 뜬 듯 신기하고 가슴 벅차더이다. 이 촌구석에 앉아서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훤히 꿰뚫게 되니, 사반세기 넘게 이 농군이 조선일보를 짝사랑해온 이유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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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말이오. 요즘은 신문 펼치기가 무섭소. 오늘은 또 무슨 기막힌 치부가 머리기사로 나올까 가슴이 조마조마하오. 방송은 진작에 꺼버린 지 오래요. 배웠다는 사람들이 굿이니 무당이니 주사제 운운하며 대통령을 욕보이니 기함할 적 한두 번이 아니오. 대통령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올시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검찰 발표와 증인들 진술이 나오면서는 나 또한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해가는 중이오. 배신에 그렇게 치를 떨던 양반이 어찌 당신을 믿고 의지한 국민을 이토록 황망하게 배신할 수 있는지. 면도칼 테러에도, 미치광이 김정은이 날뛰어도 그토록 의연하던 대통령이 한낱 사사로운 인연에 흔들려 권력을 물 퍼주듯 남용하고 농단을 눈감았는지 기가 찰 뿐이오. 그 강건했던 기개는 어디 가고 국민 앞에 불려 나와 고개를 조아리는 처지가 된 것인지. 남편, 자식 없이 혼자 사는 대통령을 피붙이인 양 염려하던 나의 늙은 아내는 대통령 담화 후 사나흘을 끙끙 앓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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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부탁하는 것은, 서울서 천릿길 이곳 민심도 한 줄 적어달라는 것이오. 광화문 촛불민심만 말고 이 시골 늙은이 소망도 한 줄 전해주시오. 나의 바람은 그저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최소의 예우를 해 드리자는 것뿐이오. 총칼이 아니라 우리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오.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그를 뽑은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이오. 양친을 총탄에 잃고 파란의 세월 살아온 여인이오. 삶의 굴곡이 너무나 깊어 판단력 흐려졌던 것이 분명하오.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아버지 대통령을 보아서라도 명예만은 지켜주면 안 되겠소. 세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어떤 시대고 간에 꼭 있을 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어놓고 간다 하더이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먼 훗날 반드시 보일 거라 나는 믿소.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경북 경산에서 걸려온 '民心' 한 통
    /이철원 기자
    촛불집회도 이제 멈춰주면 좋겠소. 축제라니요. 이게 어찌 손뼉 치고 노래하고 춤출 일이란 말이오. 나라면 청와대를 향해 침묵의 기도를 하겠소이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겠소이다. 대통령을 소와 닭에 빗대 조롱하는 팻말을 코흘리개 아이 손에 쥐여준 어른은 대체 누구란 말이오. 대선 후보란 자는 대통령의 무덤을 파자고 외치고, 또 다른 자들은 대통령을 포승줄에 묶은 모형과 함께 횃불을 치켜들었으니 세상이 어찌 되려는가 가슴 무너지더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나는 반대요. 일제와 해방과 전쟁을 온몸으로 살아온 나는 '죽여라, 처단하라' 악쓰는 자들은 절대 믿지 않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 용서가 없는 단죄는 또 다른 악(惡)을 불러올 뿐이오. 가장 나쁜 자들은 이 시대 정치인들이오. 나라가 이 지경 되는데 일조했거나 방관한 자들이 내 탓이라 엎드려 울진 않고, 호시탐탐 권력만 파고들 궁리라니요. 대통령 빈자리를 그들이 채울 거라 생각하니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고 참담할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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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두 늙은이가 서울 자식들에게 보낼 김장을 했소. 김장독 땅에 묻고 난 뒤 저무는 햇살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걸치는데, 성당 다니는 아내가 이해인 수녀의 시를 한 줄 읊어주더이다.

    '하얀 배추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헛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늙은이 주책이 길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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