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로 과학하는 법, 미국에도 소개했죠"

조선일보
입력 2016.12.03 03:00

- '기술+공예' 가르치는 이지선 교수
전류 흐르는 실·부직포로 회로 제작… 열한 살 딸도 엄마 따라 게임 개발
"직접 만들어봐야 창의력 높아져"

"엄마도 과학을 잘하는구나, 알려주고 싶었어요. 회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엄마를 보여주면 딸도 자연스럽게 기계나 로봇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지선(43)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과 교수는 '윙크하는 토끼'를 꺼냈다. 한쪽 귀를 접어 눈을 가리면 반대쪽 눈에 불이 들어왔다. 전류가 흐르는 실과 부직포를 이용한 '바느질 회로'였다. 만드는 과정에서 도체·부도체·전기회로 기호 등 기본 개념을 익힐 수 있다. 이 교수는 여성이 좋아하는 공예 작업에 기술을 접목한 '테크 DIY(Do It Yourself)'를 엄마와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바느질로 전기·전자 회로 개념을 익히는 테크 DIY 교육을 하는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가 전류가 흐르는 실로 기워 컴퓨터와도 연결이 가능한 게임판을 보여주고 있다.
바느질로 전기·전자 회로 개념을 익히는 테크 DIY 교육을 하는 이지선 숙명여대 교수가 전류가 흐르는 실로 기워 컴퓨터와도 연결이 가능한 게임판을 보여주고 있다. /이태경 기자
2014년 펴낸 책 '반짝반짝 바느질 회로'는 'Make: Tech DIY'라는 제목으로 최근 미국에서도 번역됐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기술을 공예에 접목시킨 교육을 교과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며 "처음부터 코딩, 로봇을 가르치기보다 쉽고 재밌는 '만들기'에서 시작해 단계를 높여가는 것"이라 했다.

숙명여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야후코리아 등에서 프로그래머 겸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교수는 "당시에는 여성 프로그래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잠재력이 큰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뒤떨어져 있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어린이용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아 2005년 어린이 전용 서비스인 '야후 꾸러기'를 들여와 성공하기도 했다.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회사를 나왔다. 미국 유학 중 임신해 귀국했다가 출산한 지 100일 만에 다시 태평양을 건넜단다. "아줌마의 절박함으로 뉴욕대 대학원 4학기 과정을 3학기 만에 졸업했어요. 작업하거나 강연을 다닐 때도 아이를 데리고 다녔죠."

교육 실험 대상 1호는 딸이었다. 김혜나(11)양은 초등학생 게임 개발자다. 김양은 개미굴을 본뜬 '앤트메이즈' 등의 게임을 만들고 프로그래밍 지도(地圖)인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삼성 오픈소스 콘퍼런스'에서 운영체제(OS)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르발스와 영어로 대담을 나눠 유명해졌다. 김양은 토르발스에게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세상에 무료로 리눅스 소스코드를 공개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딸도 교육이나 기술에 대한 철학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만들기를 교육하고 아이에게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정보 검색 능력'이다.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을 스스로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영어로 된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기술을 익히고 제작 과정을 찍어 전 세계 친구들에게 SNS로 공유합니다. 영어 실력은 덤이죠."

인공지능 시대에 손으로 만들기가 중요한 이유를 물었다. 이 교수는 "단순한 프로그램은 기계도 만들 수 있다. 이젠 컴퓨터로 '무엇을 어떻게' 제작하느냐가 중요해졌다"며 "창의력의 원천은 만들기"라고 답했다. "이타적인 행동이잖아요. 차가운 기계로 뒤덮여가는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을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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