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내 이름 단 병원, 믿음직스럽지 않나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6.12.03 03:00 | 수정 : 2016.12.16 09:31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병원명에 내 이름 넣으니 다들 '촌스럽다' 한소리
    주인 이름 건 점포 많아져 신뢰하는 사회 됐으면…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병원 이름을 지을 때 '송 내과의원'과 '송태호 내과의원' 두 개를 놓고 고민했다. 두 번째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부르기 쉬운 이름을 택했다.

    같은 동네에 이미 송 내과의원이 있었다면 두 번째 것으로 했겠지만 다행히 없었다. 아직 개원하지 않은 의사 후배들과 병원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이름이나 성으로 병원 이름을 짓겠다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원장 이름을 간판에 쓴다는 게 촌스러운 데다가 요즘 유행이 아니라고 했다. "이름을 걸고 환자 진료한다는 게 더 믿음직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별로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 서울에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았다. 모든 집 대문에는 가장(家長) 이름이 문패로 걸려 있었다. 조부모님과 같이 살던 우리 집 대문에는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있었다.

    아버지도 사회생활을 하셨지만 아버지 이름이 담긴 문패는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쯤 돼서야 비로소 할아버지 이름 옆에 걸렸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가 가장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에게서 어릴 때부터 한자를 배웠던 나는 등하굣길 집집마다 걸린 한자 이름 문패를 보며, 배웠던 한자가 나오면 소리 내 읽고 모르는 한자는 기억해 뒀다가 집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여쭤봤었다.

    나는 '송씨네 몇째'로 불렸고 다른 아이들도 '○씨네 아이'로 불렸다. 집집마다 어른들끼리 다 알고 지내던 시절이라, 동네에서 뭔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른들이 우리 집에 일러줬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집안 망신 시킨다"며 혼을 내곤 하셨다. 요즘엔 아파트에 문패를 거는 사람을 볼 수 없고 단독주택이라 해도 문패를 건 집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서양인들처럼 이름을 함부로 알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않는다. 어려서는 아명을 썼고 장성하고 나서는 호(號)나 자(字)를 붙여 호칭으로 사용했다. 친해지면 직함이나 성을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서양과 달리, 우리는 '김 선생' '박 사장' '이 프로' 같은 호칭을 선호한다.

    훌륭한 옛날 사람들의 이름을 따라서 쓰는 경우가 많은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 이름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다. 사람의 태어난 시각과 이름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흉악범의 이름마저도 그 뜻은 그럴듯하다.

    길에서 자기 이름을 상호로 내건 당구장을 봤다. 알려진 당구 선수였기에 반갑기도 했지만 자기 이름을 내건 것을 보니 믿음직스러웠다. 이제 이름을 상호로 쓰는 곳은 개인병원과 변호사·세무사·법무사 사무실이 대부분이다.

    동네 수퍼마켓이나 세탁소, 치킨집이 주인 이름을 상호로 쓰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가 하면 서양에 가면 이름을 내건 상호가 매우 많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에도 창업자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는 곳이 무척 많다. 전문직이 아니라 해도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에 더 믿음이 간다. 이런 점포가 많아지는 게 좋지 않을까.

    이름을 계속 바꿔가면서 못된 짓 해온 사람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울화가 쌓이는 시절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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